성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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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권선징악과 기독교 조회수 : 1651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15-09-06

욥이 친구들에게 원한 것은 윤리적인 훈계가 아니었다. 다만 자기가 당하고 있는 고통을 나워 갖고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권선징악과 응보주의의 차원에서 욥을 비난하려 하였다. 그런데 욥기의 작가가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은 기독교가 선한 사람은 흥하고 악한 사람은 망한다거나, 뿌린 만큼 거둔다는 식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요한복음 9장의 시각장애인 이야기에서 “그가 맹인이 된 것은 그이 죄도 그의 부모의 죄도 아니고 다만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뜻이 통하는 것이다.(요 9:1~3 참고)

욥 역시 그런 점에 반발했다. 그들이 진정한 친구라면 그를 위로하고 고통을 잊게 해 주어야지 기껏 “네 죄를 네가 알렸다”하고 채찍을 드니 그런 사람을 과연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욥은 서러움에 북받쳐서 자기의 고통을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욥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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