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홈  >  자료실  >  한국교회사

목록보기

  제  목 : 교파 교회의 선교활동 조회수 : 2404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3-22
한국에서 이루어진 선교는 단일교파가 아니고, 다양한 형태의 교파교회가 들어왔다.
성공회는 코르프 박사가 6명의 성직자와 2명의 의사와 함께 도착하여 선교를 시작해서 1891년 9월 30일에 제물포에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을 세웠다.

호주 장로교회는 1889년 데이비스와 그의 누이동생이 경상남도 일대를 무대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데이비스는 1년도 못되어서 천연두에 걸려 희생되었다. 그러나 호주 장로교회에서는 계속 선교사를 보내서 지역의 선교와 교육에 공헌하였다.
캐나다 선교회의 시작은 특수했다. 공식선교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입국한 청년 맥캔지는 조선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서 죽을 때까지 일하기로 결심하였고, 황해도 장연의 솔내로 가서 한복을 입고, 한식을 먹으면서 죽을 때까지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의 설교가 필요 없을 정도로 선교사를 존경하였다.

그의 헌신적인 선교활동에 감동을 받은 캐나다의 장로회 선교부는 세 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후에 그 유명한 게일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침례교의 한국 선교는 말콤 팬위크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개인의 자격으로 조선 땅을 밟았다. 그는 허드슨 테일러를 본받아서 조선 순회선교회를 조직하여 전국을 다니며 선교의 열정을 불태웠다.

성결교는 단일한 하나의 교파로 시작된 교회는 아니었다. 미국의 감리교 목사였던 카우만과 킬보른이 하나님의 은혜를 뜨겁게 체험한 후 성서적인 복음을 동양에 전하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일본에 도착하여 노방전도와 선교사업을 시작하며, 성서학원을 열었는데, 이 학원에서 공부한 한국인 김상준, 정빈, 두 사람이 귀국하여 서울의 무교동에 집을 한 채 매입하여 시작한 것이 성결교회의 시작이다.

구세군은 1908년 10월에 구세군 본영이 있는 런던에서 호가드 정령이 서울에 구세군 영을 창설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군대라는 의미로 군복을 착용하는데, 이것 때문에 일본 치하에서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전파된 교파교회의 문제점은 우선, 교파의 조직과 제도가 신앙보다 앞세워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적인 배경에서 생성된 예배와 의식 때문에 주체적인 신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

 "

  이전글 : 최초의 공식적인 선교사들
  다음글 : 한국교회 초창기의 신앙형태 - 이수정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