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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교회의 조직과 선교 - 장로교회/침례교회 조회수 : 2799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3-22
한국교회는 시련의 골짜기를 극복하는 힘이 교회 자체 내에 있다고 믿고 교회의 전국적인 조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로교회가 그 교세의 전국적 확장으로 인하여 총회를 조직하게 된 것이 1912년 9월12일 평양여자성경학원에서의 일이었다. 여기에 출석한 총대는 목사 장로 선교사를 합하여 221명이었고, 이들은 한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당시 도로의 사정이나 교통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대단한 일이었다. 한국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전국적인 모임이 이 총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고 불 수 있다.

이 총회는 몇 가지 중요한 의의를 지닌 회의였다. 우선 이 총회는 아직까지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 총회에서는 언더우드선교사를 총회장에, 블레어 선교사를 회계에 선출하였고, 그 외의 직은 한국인에게 돌아갔다. 둘째로 이 총회는 최초의 안건으로 선교의 사명을 다시 결의하기로 다짐하고 중국 산동성의 내양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외국 전도를 강화하고, 매년 추수감사절은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고 헌금도 하기로 결의하였다.

셋째로는 세계교회와의 연대의식의 강화이다. 이 총회의 조직에 세계교회와 중국 산동성의 노회, 그리고 일본교회가 각각 축사를 보내왔고, 총회는 총회대로 각국 장로교의 총회와 장로교 만국 연합회 총회에 본희의 설립을 공고하였다. 어떤 이들을 일본교회와의 교류와 연합을 주체성의 사실로 보기도 하였다.

선교에 대한 교회의 숭고한 사명이 넓게 호응을 얻는 중에 선교 침례교회도 조직되었다. 침례교회의 심명균 목사는 귀리밥을 먹으면서 만주의 길림성과 노령, 수청, 연추에서 해외 전도에 전심하였으며, 노재천목사의 북간도 선교도 가시밭과 같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혹한속에 귀와 입을 수건으로 싸매고, 발은 동상에 걸려서 감발로 감았으며, 얼굴은 얼어서 부었지만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침례교는 이밖에도 1918년 박로기 김희서 김영태 최응선 네 사람을 노령의 브니엘과 목커우에서 순교자로 하나님께 바쳤다. 침례교회는 교세가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주나 연해주에서 계속했던 선교의 업적은 이 나라 교회사의 금자탑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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