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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감리교회 신앙의 형성 조회수 : 2431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3-22
감리교회는 장로교회보다 2년 앞서서 1916년 2월에 신학지인 <신학세계>를 발행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감리교회의 독특한 신앙과 교회의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신학세계>는 그 창간호의 간행사에서 “조선 교역자의 지식을 증진케할 책임”을 다짐하고 “이 책은 순전한 종교적 잡지인고로 정치에 관한 문제는 결코 다루지 않을 것”이라 하여 그 종교적 경건은 공포하고 있다.

특별히 이 잡지는 재정에 관한 관심을 강하게 표명하고 있다. 창간호에는 양주삼의 “기독교의 재정론”이 실려서 “교회가 종교에 관해서는 많이 생각하고 재산에 대해서는 적게 생각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무식한 열심”이라고 공격하였다. 이러한 재정적 관심은 제2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금일 조선교회에 대한 문제”라는 글에서 “신앙이란 영육의 문제가 공히 원만하게 해결됨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거슬러 올라가 윤치호는 1910년에 에딘버러에서 열린 국제선교협의회에 참석하여 선교비의 거취문제를 취급하면서 선교사들은 선교비의 사용에 있어서 반드시 그곳 교회와 정당하게 의논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이 잡지에서는 감리교회의 교회일치에 관한 열정과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최병일목사는 “장로교, 감리교, 그리고 기타 교파들이 협력하지 않고 폐쇄적인 자세로 대하는 것은 탄식할 일”이라고 하였다. 도이명목사도 “조선교회 성장의 장애는 각 교파를 따라 교회 분리가 점점 깊어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조선 안에 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대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한다”고 하였다. 감리교회의 이러한 포용성은 일본교회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협성신학교의 초대교수 가운데는 일본인 신학자가 들어있기도 하였다.

특히 이 잡지는 조선 감리교회의 토착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사실상 조선 감리교회는 말콤 펜위크 이후 가장 성실하고 실질적으로 기독교의 한국적 토착화에 대해서 구체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학세계> 창간호에서 벌써 백영현은 “예수, 공자, 양교비교론”을 시도하였고, 이후 계속 연재하였는데, 이런 문제는 장로교회에서는 손도 댈 수 없는 주제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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