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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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교회와 3.1운동 조회수 : 2313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3-22
대부흥운동 이후의 한국교회는 그 신앙의 진실함이나 수적인 성장에 있어서 한국교회 역사상 찬란한 결실을 거두고 있었다. 이러한 교회의 성장은 한국인의 사회구조나 거기서 비롯된 의식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들은 가족적인 연대에 기초를 둔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고, 사회의 심리는 소속감에 근거한 안정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족적 연대감이나 사회적인 소속감은 기독교 선교를 효과적으로 이루어가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강력한 반대세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선교사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가족의 연대의식은 한국에서 기독교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도구로서 작용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앙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 것은 친근한 친척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가족적 연대는 교회를 강력하게 하나로 묶어 놓았다. 이러한 힘이 애국의 열의와 함께 나라를 상실한 백성들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러한 힘은 3.1운동을 통해서 폭발하였다. 이 운동은 조선인 모두의 운동이었고, 천도교나 불교 같은 여러 종교단체가 참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핵심과 다이나믹한 힘은 기독교를 통해서 이루졌다.

3.1운동은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이나 고종의 서거가 원인이 되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인의 독립에 대한 열망, 엄격한 총독정치에 의한 군경의 횡포, 일제의 민족성 박멸, 토지의 박탈, 그리고 조선인을 만주로 강제로 이주시키는 정책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와 교회가 가르친 민족을 사랑하는 신앙적인 경향 등이 통로가 되어서 폭발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시작은 교회가 아니었다. 3.1운동은 일본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국내에서도 천도교의 인사들과 그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서 발화되었다. 그 후 이 운동이 점차 구체화 되면서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양전백 이명룡 함태영 현순 오화영 신석구 신흥식 정춘수 오기선 등 여러 목사의 참여가 결정되었다. 이를 통해서 교회가 대거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3.1운동의 민족적 가사는 그 기초와 통일성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에 교회인사 16명이 서명 날인함으로서 독립만세운동의 대오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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