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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이용도의 신비주의 2 조회수 : 2630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3-30
여기에 이용도목사의 유명한 편지 한 구절을 소개한다.

“주님의 사랑을 찾고 찾으라, 그리하여서 깊은 사랑의 내전까지 찾아 들어가라. 그곳은 사랑의 지성소니라. 그대는 그곳에서 솔로몬의 휘장같이 빛나는 사랑을 노래하라.”

그는 설교는 진리를 말하는데 있지 않고 사는데 있으며, 종교는 설교가 아니라 삶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넘치는 은유와 필법에도 불구하고 언어에 대한 그의 불신의 집요했다. “시무언(是無言)” 그는 항상 이것을 자신의 처지라고 생각하였다. “오 주여 나는 공(空)이요, 무(無)로소이다.” 라고 했고, “是無, 이것이 나의 좌우명”이라고 했을 때 그에게는 이미 신비적 영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언(言)을 버리고 행(行)에 삽시다”라는 말은 교리나 교직의 형식화에 반대하는, 다시 말하면 교직에 대한 경멸의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진수는 사랑에 있다는 확신이 그의 삶을 지배했다. 요한복음을 가장 소중한 성서라고 권장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한 걸음 지나친 것이 있었다. 그는 무조건 사랑을 신봉하면서 심지어는 사탄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며, 불교와 사회주의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강조하는 한편, 신학과 교리의 기독교를 공격하므로 신비주의가 가지는 공통의 오류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의 동기는 나무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사랑의 융합을 통해서 “주님과의 혈관적 연합”을 이룬다고 믿고 있었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를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말았다. “울어라! 성자야, 울어라! 성녀야, 겟세마네는 어디 있어 나의 피눈물을 기다리누. 오 나를 위하여 홍포를 입은 자여. 가시관을 엮은 자여.”

조선의 교회는 그의 경건을 의심하게 되었다. 감리교의 경성 지방회에 불복한 그를 장로교 황해노회에서 금족령을 받았고, 1932년 10월에는 평양노회가 그의 부흥회를 단죄하였다. “여러분 이 땅은 내가 가장 땀을 많이 흘린 곳이요, 내 눈물이 가장 많이 떨어진 곳이외다”하고 부르짖었지만 이미 교회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장로교 총회가 그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은 1933년 9월 제22회 총회 때의 일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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