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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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새 교단의 출현 조회수 : 3982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6-01
일본은 한국교회의 총괄적 체질변모를 통해서 교회를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그 실현 방안으로 마침내 1943년 4월, 조선혁신교단을 조직하고 헌법을 제정하여 전필순 목사를 의장으로 뽑고, 성서 중에서 유대민족의 해방과 관계된 부분, 즉 출애굽기와 다니엘서를 비롯한 대부분의 구약성서와 신양성서의 요한계시록 및 찬송가의 개편을 지시하고, 기왕 보급된 성서 중에서 위에서 지적한 부분은 떼어 버리든지, 아니면 먹칠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그후에는 구약성서 전부를 폐기하고, 신약성서에서도 4복음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성서를 말살시켜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장로교의 경성노회는 김영주 부회장의 주장으로 이 교단에 장로교 목사가 참여하는 것을 비판하고, 정상적인 행정적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음을 들어서 전필순 목사의 제명을 위협하였다. 감리교회에서도 변홍규 목사를 중심으로 조선혁신교단의 설립을 반대하였다. 할 수 없이 전필순 목사는 여기에서 탈퇴하였고, 혁신교단을 조직을 새롭게 하여 조선감리교단에 환원하도록하였다.

마침내 1945년 7월 18일, 일본은 그나마 조선에 남아 있던 교파들을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완전히 통합하게 되었다. 장로교 대표가 27명, 감리교 대표가 21명, 구세군 6명, 그리고 소교파 다섯 군데서 각각 1명씩 모여 이 교단의 설립이 발표된 것이다.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의 초대 통리는 김관식목사, 부통리는 김응태 목사, 총무에 송창근 목사가 총독부의 임명을 받아 취임하였다. 해방 3주일 전의 일이었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투옥하거나 강단에서 추방한 후 함구령 또는 금족령을 내려 실제적인 활동을 억제하였고, 다만 일본의 의지와 요구에 순응하는 인물만이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간악한 수단을 동원하여 교회를 핍박하였다.

이러한 흉악한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교회는 “태워도 타지 않는” 열정으로 끝까지 복음을 수호하였다. 어두워지던 저녁은 찬양의 아침을 잉태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신앙적인 결단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인 특유의 은근과 끈기, 그리고 신앙적 슬기로움으로 믿음을 지켜냈고, 결국 그 고통스런 참극은 고요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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