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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출옥성도 조회수 : 2974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6-08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순교와 압제의 36년을 보내고 드디어 해방의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남북의 분단은 지금까지고 몸의 가시처럼 남아 있는 이 민족의 고통이다.

해방 후 이 땅에서는 교회 재건 운동이 지체없이 진행되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투옥된 70여명 가운데 주기철, 채경민 목사 등은 감옥에서 순교하였고, 나머지 20여명은 출옥되었다. 이들은 스스로 “출옥성도”를 자처하면서 상상을 초월한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영광된 수난과 그 순교정신은 기성교회의 현실 타협적 신앙에 반항하면서 참회할 것을 요구했는데, 교회는 이들의 비판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출옥성도들은 해방직후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 모여서 한국교회의 재건을 위해서 합심기도하면서 의견을 나눈 뒤, 1948년 9월 20일에 다음과 같은 재건 원칙을 발표하였다.

1.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사참배를 하였으니 스스로 권징의 길을 택하여 통회하고 정화한 뒤 교역에 나갈 것
2. 권징은 자책이나 자숙의 방향으로 하되, 목사는 최소한 2개월간 통회 자복할 것
3. 목사와 장로의 휴직 중에는 집사나 평신도가 예배를 인도할 것
4. 교회 재건의 기본 원칙을 전국에 전달하여 일제히 실행하게 할 것
5.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를 복구 재건할 것

그러나 이러한 재건의 원칙은 냉정한 현실에 부딪쳤다. 그해 11월에 평북노회 주최로 열린 교역자 퇴수회에서 박형룡박사의 공박을 받은 홍택기 목사가 반박하면서 해외로 도피했던 사람이나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나섰던 사람이나 모두 다 똑같은 고생을 했다고 말하면서 신사참배의 문제는 개인이 하나님과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원칙을 정해서 그대로 따르라고 강요할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정연한 논리가 있었다.
그러자 이기선 목사 등이 중심이 되어 평북지방의 30여교회가 모여서 교회를 설립하고 재건의 때를 기다리다가 1949년 “기독교도연맹”이 핍박이 시작되자 교회를 설립하였는데, 후에 장로교 독로회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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