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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파라오 이야기 조회수 : 2752
  작성자 : 박행신 작성일 : 2010-07-02


이번에는 파라오에 대해서 배워볼까요?

이집트인들은 파라오가 신이라고 믿었고, 파라오를 하늘의 신 호루스와 태양신인 레와 아몬 및 아톤과 동일시했습니다. 죽은 뒤에도 파라오는 여전히 신성을 유지하여, 호루스의 아버지이며 죽은 자들의 신인 오시리스로 변형되었고, 그의 아들인 새로운 파라오에게 신성한 권력과 지위를 물려주었지요.

파라오의 우라에우스(파라오의 왕관에 달린 코브라 모양의 표장)는 적들에게 불길을 토해냈고, 파라오는 전쟁터에서 수천 명의 적을 짓밟을 수 있었으며 모든 것을 알고 자연과 땅의 생산력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신이었으며, 신성한 통치자로서 신이 주신 질서의 수호자였답니다.



왕들의 계곡에서 출토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뿐만 아니라 파라오는 이집트 땅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그 사용법을 지시했으며, 백성의 경제적 복지와 정신적 행복을 책임졌고, 신하들에게 정의를 보여주는 존재였고, 최고의 권위를 지녔으며, 포고령으로 나라를 다스렸지요.

그러나 공정하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파라오도 남에게 책임을 위임해야 했어요. 가장 지위가 높은 보좌관은 와지르였는데, 와지르는 여러 가지 의무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담당하고 국고를 관리하는 우두머리로서 재정을 책임지고 모든 기록을 감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였답니다. 이 중앙정부 밑에서 파라오의 뜻(통치)은 노모스[우리나라의 도-경기도, 충청도 등-와 비슷한 개념]를 통해 집행되었어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는 노모스라는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파라오는 신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살았고, 신하들은 그를 신성한 왕으로 높이는 의식을 따랐어요. 예를 들어 파라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했으며, 파라오가 죽으면 이집트식 장례를 거행했는데, 이 장례식은 그가 내세에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고 이집트인들은 생각했지요.



람세스 2세의 석상


그러나 이집트인들도 그들의 신성한 통치자가 높은 지위를 갖고 있긴 하지만 역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그들은 파라오의 업적에 따라 그를 평가하고 비판했으며, 또 파라오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몄고, 무능한 파라오는 왕위에서 몰아내거나 살해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새로 왕위를 계승하는 파라오는 모두 그를 신성한 통치자로 인정하는 의식과 전통을 보호받으며 왕위에 올랐습니다.

따라서 파라오는 행정의 책임자인 동시에 성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으며, 고위 관리들은 파라오가 우주의 조화와 정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는 행정적 위계질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측면도 내포하고 있었어요.



아부심벨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신전
원형부분의 사람과 비교해볼 때 그 규모가 엄청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라오의 주된 종교적 의무는 사원의 건축이었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들이 지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거처를 필요로 한다고 믿었으므로 왕들은 신전을 지어 숭배와 제식을 치러야 했답니다. 이때 신전은 종교적 기관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부를 창출하고 관리하며 배분하는 수단으로서의 경제적 장치이기도 했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파라오의 권위가 흔들리거나 그 힘이 쇠약해지면, 이는 신들이 돌보아 주지 않아 이집트가 어둠의 시기를 맞아 경제적으로 쇠퇴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파라오의 강력한 중앙권력은 필수적인 것이었답니다.



파라오가 쓰는 왕관
왼쪽은 상이집트(흰색) 가운데는 하이집트(붉은색) 오른쪽은 상하이집트의 통합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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