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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② 조회수 : 2695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6-18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Henry G. Appenzeller

영국 런던에서 출생하여 미국으로 이민하여 뉴욕대학교를 졸업한 언더우드가 뉴브런즈윅신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1883년 신학교 연맹 모임에서 조선 민족에 관한 소식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지금 조선은 일천삼백만 민족이 복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채, 가난과 질병과 학대 속에서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그 나라가 드디어 작년에 문호를 열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조선 민족을 위해 선교사로 갈 것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알버트 목사님의 호소력 있는 메시지는 많은 신학생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언더우드는 그 당시 인도 선교사로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선교에 대한 강한 도전을 받기는 했으나, 조선으로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인도로 선교사로 가기위해 인도 말을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로 잘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알버트 목사님의 조선 선교의 권유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언더우드는 개인적으로 친구들에게도 권유해 보기도 했지만 그들은 다 국내에서만 사역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왜들 이럴까? 주님께 헌신을 맹세한 사람들이 왜들 다 미온적일까? 주님이 기다리시는 그 땅으로 갈 선교사가 이렇게도 없다는 말인가? 그때 돌연히 강력한 반문의 소리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너는 왜 가지 못하느냐?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나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더우드 선교사를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의 메시지였다.

그래서 그는 이미 선교사가 많이 파송되어 있는 인도보다 단 한번도 복음을 못 들어 본 미전도 종족인 조선민족에게 선교의 우선순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또 한번의 희생을 치르기로 하였다. 그동안 인도를 위해 인도 말을 배우고 준비해 놓은 모든 것들을 모두 조선 선교를 위해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어려운 결단을 하고 조선을 선교지로 정하고 나서, 미국 교회와 선교부에 조선선교사로 가기로 요청을 하였지만, 두 번씩이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조선 선교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기도하면서 우여 곡절 끝에 미국장로교 본부회의에서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게 되었다.

그는 미전도 종족인 우리 민족을 가슴에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장도의 길에 올랐다. 한달 여 걸리는 긴 항해 끝에, 일본을 거쳐 1885년 4월 2일 부활주일 새벽에 부산 앞 바다에 잠시 정박하여, 조선 땅과 조선민족을 처음으로 바라보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그 후 부산을 떠나 삼일 후인 4월 5일에 감리교의 아펜셀러 선교사 부부와 함께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하였다. 기독교가 이 땅에 공식적으로 발을 내 딛게 된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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