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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조선을 위해 선교사, 교육가, 저술가로 살았던 게일 조회수 : 2867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8-06
조선을 위해 선교사, 교육가, 저술가로 살았던 게일. (J.S.Gale)

캐나다 출신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였던 게일은 1863년 2월 19일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스코틀랜드계의 부모에서 출생하여, 1888년 토론토대학을 졸업한 후, 토론토대학 기독청년회 지원으로 25세의 나이로 12월 15일 기포드 목사와 함께 미지의 땅 조선에 첫 발을 디뎠다.

조선 땅에 들어온 그는 예수교 학당에서 영어를 가르쳤으며, 성서공회 전임 번역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선말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헌신하였는데, 주로 사도행전,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고린도전·후서, 요한1서 등을 번역하였다.

그 후 토론토대학 기독청년회의 선교지원비가 중단되자 1891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 소속을 바꾸어 활동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1892년 4월 7일에는 존 헤론 선교사의 미망인 깁슨과 결혼하였다.
1897년 4월 그리스도신문 주간으로 집필활동을 시작하여 10여 년간을 주필로 활동하였다. 안식년 기간 동안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게일은 북장로회 목사가 되어 1898년 4월 다시 내한하였다.

다시 조선 땅을 찾은 게일 선교사는 원산에 머물면서 수필집 "한국 만록"을 집필하였다. 원산 지방이 캐나다 장로교 선교구역으로 변경되자 1899년 9월에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사역지를 옮긴 후 1900년 연동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다.

서울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한 게일은 경신학교와 정신여학교를 세워 본격적인 교육사업을 하였는데, 이 기간동안 영문소설 "첨병"을 집필해 미국에서 발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울의 역사를 기록한 ‘한양’을 출간하였고, ‘의회 통용규칙’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등 교회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1917년 5월에는 조선음악연구회를 조직하여 찬송가 개편작업을 착수하였으며, 1922년에는 천로역정을 한국어로 번역하였고, 구운몽을 영어로 번역하여 런던에서 출판하였다. 그는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단행본저서를 무려 43권이나 펴냈다.

1906년에 두 번째 안식년을 맞은 게일은 스위스로 가서 가족을 만나 그들과 함께 영국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조선을 찾았다. 그 후 1908년 제2회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의 회장이 되었고, 1908년에 해티 부인이 별세하자 1910년 4월에 영국인 여성 아다 세일과 재혼하였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다.

조선교회와 문화, 그리고 문학에 큰 공헌을 한 게일은 1927년 조선을 떠나 영국에서 여생을 보내다 1937년 1월 31일 부인과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74세로 별세하였으며, 그의 유언대로 양화진에 묻혔다. 조선의 장래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정신적인 지도자라고 믿었던 그는 인물을 키우기 위하여 애를 썼던 선교사이며 교육가고, 저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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