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사람들
•홈  >  쉴만한물가  >  믿음의사람들

목록보기

  제  목 : 1907년 부흥운동의 불을 붙인 하디선교사 ① 조회수 : 2936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8-06
1907년 부흥운동의 불을 붙인 하디선교사 (Robert. A. Hardie)

캐나다에서 출생한 하디는 토론토 대학 의과대학에 재학하던 중, 당시 열풍처럼 번지던 ‘대학생 선교 자원운동’을 접하고 선교사로 지원했다. 1890년, 그는 캐나다 대학 기독교청년회의 후원으로 내한하여 교파 소속 없이 서울과 부산, 원산 등지에서 의료활동을 벌였다.

1896년에 이르러 캐나다 대학생들이 보내주는 선교 후원비가 중단되자 캐나다로 돌아가야 할 위기에 처했으나 개성에 병원을 설립하여 사역하던 남감리회에서 그를 받아들임으로 남감리회 소속 선교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초기에는 의료 활동에 전념했으나, 1898년 원산으로 옮긴 후에는 병원보다는 교회를 돌아보면서 전도와 목회에 더욱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태백산맥이 가로지르는 함경도와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전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눈에 띄는 선교결실도 맺지 못했다. 또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실망만 더해갔다.

이러던 중 1903년 8월, 원산에 있던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던 중에 휴가차 원산에 들른 감리교 여선교사 화이트의 제안으로 요한복음 14장을 중심으로 기도와 성령체험에 대해 토론하며 진행되는 성경공부 모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피동적인 자세로 임하던 하디는 바로 이 모임에서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다.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어 첫 번째 명령하신 것은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할애했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실패한 원인을 밝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괴롭고,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선하다 하셨으니, 그것은 오늘날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하심입니다. 지난 수년간 나는 한국인들에게 죄를 자백하게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여 주도록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 때까지는 내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해 지속적인 회개, 그리고 고통을 수반한 회개를 한 적은 없습니다.”

하디는 성령체험을 한 다음 주일, 낮 예배시간에 원산교회 회중들 앞에서 자신의 오만과 불신을 공개적으로 자복했다. 한국인 회중들에게는 이것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때부터 원산에서 모이는 집회마다 공개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나 선교사와 교인들 모두에게 성령 충만한 영적 갱신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디의 변화는 다른 선교사들에게 큰 영행을 미쳤고, 선교사들의 변화는 조선교회를 변화시켰다.

1903년 여름에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와 중생의 체험을 하였다. 그리고 선교사 사이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선교사와 함께 생활하는 한국인 조사와 전도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계속)

 "

  이전글 : 조선을 위해 선교사, 교육가, 저술가로 살았던 게일
  다음글 : 1907년 부흥운동의 불을 붙인 하디선교사 ②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