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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1907년 부흥운동의 불을 붙인 하디선교사 ③ 조회수 : 2949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9-01
1907년 부흥운동의 불을 붙인 하디선교사 (R.A. Hardie) ③
벽제 출신의 윤승근은 선교사 돈 뿐 아니라 과거 예수를 믿기 전에 횡령한 것도 생각났고, 생각 나는대로 돈을 갚기 시작한다. 그는 옛날 인천 주전소에서 근무할 때 횡령한 돈도 생각났고, 쓸 것을 쓰지 않고 돈 20원을 모아 이미 폐쇄된 인천 주전소 대신, 국가 재정을 관리하는 탁지부로 가서 사정을 말하고 돈을 내놓았다. 탁지부는 “희한한 일이다”며 영수증을 써주었다.

윤승근이 갚아낸 돈에는 ‘양심전’(良心錢)이란 이름이 붙었다. 윤승근과 같이 부흥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회개한 교인들은 과거 횡령하거나 훔친 돈을 돌려주는 보상행위가 잇따랏고,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받을 대상이 없어 돌려줄 수 없는 경우, 그런 돈은 교회에 헌금했다. 이렇게 제단에 바쳐진 돈을 ‘양심전’이라 했고, 양심전은 신앙을 통해 양심을 회복한 기독교인들이 보여주 구체적 ‘회개의 열매’였다.

‘양심전’ 주인공 윤승근은 1904년 초, 강원도 김화 땅 새술막(학사리)에서 전도하다가 폐결핵으로 별세하고 말았다. 몸을 아끼지 않고 강원도 산간지방을 돌며 전도에만 몰두했던 결과였다.

“그는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부흥시키는데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법을 알았고, 어디 가서든 그것을 떳떳하게 밝혔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표내서 는 안되며 그렇게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는 실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말년에 너무 과로하여 극도로 몸이 쇠약했음에도 기쁨과 행복에 넘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죽음도 그를 겁주지 못했습니다. 그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그리고 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그로 인해 그가 얻은 믿음의 승리를 생각하면,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그를 통해 우리 교회에 가장 추악한 죄인이라도 부르셔서 당신의 능력으로 채워 새 사람으로 만드신다는 예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으로 성령을 체험한 한국인들에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다. 신분과 출신, 나이와 환경이 달랐지만 성령을 체험한 그들에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기 죄를 공개적으로 시인했고, 자복 후 평안과 기쁨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회개 후 변화된 삶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디선교사를 통해서 시작된 원산부흥운동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본질적인 신앙체험을 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서양종교’ ‘선교사들의 종교’로 치부하던 기독교를 ‘한국인의 종교’로 승화시킨 계기를 마련했다. 이처럼 조선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헌신한 하디선교사는 아내와 함께 양화진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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