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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고아의 아버지 소다(曾田嘉伊知) 조회수 : 2961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9-04
양화진에 뼈를 묻은 사람들 ------------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고아의 아버지 소다(曾田嘉伊知)

전도사이며, 사회복지 사업가인 소다전도사는 1867년 일본 야마구찌에서 출생하여 오카야마에서 한학을 공부한 후, 25세 때 노르웨이 화물선 선원이 되어 홍콩에서 영어를 배웠고, 대만에서 독일인 경영의 공장 사무원 겸 통역으로 활동하면서 독일어를 공부하였다.
그후 중국 대만 등지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술에 취해 빈사상태에 있을 때 한국인이 구해주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생명을 구해준 조선에 은혜를 갚기로 결심하고 1905년에 내한하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 우에노 다끼꼬를 만나 결혼한 후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새사람이 되어 술을 끊었다. 그리고 1910년, 한국교회 대부흥 운동 때 이상재 선생의 전도운동에 동참하였으며, 경성 감리교회 전도사가 되어 매서인을 겸한 복음 전도에 투신하였다.

YMCA 일본어 교사로 봉사하였고, 3.1운동과 105인 사건 때에는 한국인 청년지도자들의 석방에 앞장섰으며, 1921년 가마쿠라 보육원 경성지부장에 취임하여 두 내외가 전심으로 고아들을 보육하게 되었다. 그는 8.15광복 때까지 1천여명의 고아를 돌보아주었다.

그의 역경과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거리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안고 유모를 찾기 위해 이집저집 대문을 두드리기 일쑤였고, 병든 아이 때문에 밤잠을 자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그는 자선가로 위장한 일본의 앞잡이라고 비방을 받기도 했고, 1943년에는 77세에 원산교회 무보수 전도사로 취임하여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8.15 광복 후 일본으로 돌아갈 때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서 배편으로 시모노세끼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그는 한 손에는 세계평화란 표어를 들고,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일본의 회개를 부르짖었다.

한경직 목사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온 소다전도사는 가마꾸라 보육원의 후신인 영락보린원에서 고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행복한 사랑을 나누다가 1962년 95세에 별세하였다. 그의 장례는 대한민국 사회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일본인으로는 최초의 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그는 양화진 묘지에 있는 유일한 일본인인데, 그의 묘비에는 "소다 선생은 일본사람으로 한국인에게 일생을 바쳤으니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나타낸 것이다. 1913년 가마꾸라 보육원을 창설하여 따뜻한 품에 자라난 고아가 수천이며, 1919년 독립 운동시에는 구금된 청년의 구호에 진력하였고,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에 대한 국민적 참회를 순회 연설과 복음전도활동을 하다가 94세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 1962년 3월 28일 영락보린원에서 장서하니 향년 96세였다.“라고 적혀있다.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산 하나님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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