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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영광스런 가문 젠소선교사 가족. John ... 조회수 : 2798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9-24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영광스런 가문 젠소선교사 가족. John Frederick Genso

양화진에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선교부 회계를 비롯하여 세브란스 재단의 재정분야 총괄 책임자로 활동한 J. F 젠소의 묘지가 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이며, 정신여학교 교장과 사회복지 분야에 헌신한 마벨 R. 젠소의 묘지도 있다. 또한 세 살의 어린 나이로 죽은 젠소 선교사의 아들 묘지도 함께 있다.

젠소는 1884년 미국에서 출생하여, 1908년 11월 19일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경기도 양주군 봉화현교회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교회는 당초 감리회 선교사가 설립하였으나 장로회와 감리회 간에 선교지역분할협정으로 장로회에 편입되어 젠소선교사가 교역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또한 1915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가 재단법인으로 조직될 때 재정분야를 총괄했다.

그는 서울 안동교회의 사택을 확충하는데 땅을 공여한 일도 있다. 이 땅은 후일 그의 딸 바바라의 증언을 통하여 안동교회 명의로 등기를 이전했다고 한다. 그는 1941년 일제의 압력으로 강제출국 하였다가 1946년 다시 내한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잠시 서울을 떠나 일본에 체류하던 중에 고베에서 별세하여 양화진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한국선교역사의 저자인 해리 로드는 ‘한국전쟁 기간 중 교회가 잃은 두 가지 큰 손실 중 하나가 젠소의 별세’라고 할 정도로 그는 한국선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젠소선교사의 부인인 마벨여사는 1906년 6월 6일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선임되어 1908년 11월 27일 내한하여 서울에서 활동하며, 언어학을 공부한 뒤 1910년 정신여학교 제7대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1910년 젠소선교사와 한국에서 결혼하여 1남 2녀의 자녀를 낳은 후에도 1916년까지 영어교사와 아동교육 및 심리학교사로 봉직하였고, 1920년 정신여학교의 교장 서리로 다시 취임했으며, 전도사업과 사회봉사 사업에도 진력했다. 젠소선교사가 안동교회에서 사역할 때는 교회부설 유치원의 초대원장으로 있으면서 영어성경반을 인도했다.

뿐만아니라 YWCA에서 성경과 영어를 가르쳤으며, 기독교 여성단체 등에서 끊임없이 활동하던중 1941년에는 일제의 강압으로 출국하였다가 1947년 다시 내한하여 계명협회 협동총무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6년에 보육원에서 아동 및 부녀복지사업을 끝으로 한국에서의 선교사직을 은퇴하고 출국하여, 1957년 6월 28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별세했다. 유해는 양화진의 남편 곁에 안장되었다.

젠소 선교사 부부의 아들 존은 1911년 한국에서 출생하여, 3살의 어린 나이로 서울에서 사망하여 양화진에 묻혔고, 딸들도 서울에서 출생하여 외국인학교의 교사로 봉사하며, 하나님의 일에 열중하다가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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