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사람들
•홈  >  쉴만한물가  >  믿음의사람들

목록보기

  제  목 :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젠센선교사 조회수 : 3120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10-17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젠센선교사. A.K. Jensen

미국 감리회 선교사인 젠센선교사는 한국교회를 위하여 선교활동 중 일본 정부에 의하여 추방당한 일이 있고, 6·25 전쟁 때는 북한군의 포로가 되어 갖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비문으로 유명하다.

옆자리에는 1926년부터 1969년까지 한국에서 일생을 여성목사로 헌신한 그의 부인(Maud)묘지가 있고, 서울외국인학교 교장으로 봉직한 딸(Clair Lee)의 묘지도 함께 있다.

덴마크 네스보그에서 출생하여 전자회사에서 일하던 젠센선교사는 1914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1차 세계대전 때 미 육군으로 참전하여 1818년 미국 시민권을 받았으며, 아이오와주 코넬 대학을 졸업하고, 1927년 보스턴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 감리교 국내 선교부에서 일하다가 1927년 내한하여 경기·서울지역에서 1956년까지 활동하였다.

내한 초기 인천에서 7년간 선교 활동을 하다가 1934년 안식년으로 귀국한 그는 1년 후 다시 돌아와 수원 인천 원주 서울 등지의 순회 선교사로 헌신했다. 1940년 일제의 추방령으로 출국되었으나 8·15 광복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일하던 중 개성 출장 중에 6·25 전쟁을 만나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후 평양에서 압록강(만포진)에 이르는 “죽음의 행렬”에 끼어 고통을 당했고, 3년간의 억류 생활을 하던중 1953년 휴전으로 석방되어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뉴욕에 도착했다.

그러나 1954년 10월 부인과 함께 다시 내한하여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교회를 재건하려는 전후복구사업에 진력했다. 그후 연세대학 재단이사로 활동하던 중 1956년에 한국을 방문한 ‘미국고문단’ 일행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회담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심장마비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젠센선교사의 부인인 매드젠센 선교사는 1926년 감리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젠센과 결혼한 후 한국에서 딸(Clair Lee)과 아들 필립(Philip)을 낳았다. 내한 초기에는 인천지방에서 선교하였고, 감리회 최초의 여성목사로 안수 받았으며, 드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선교부 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56년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한국에 남아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메드선교사는 남편과 사별한 후 남편 젠센을 기념하는 사업으로 미국에서 7만달러를 모금하여 정동교회에 2층양옥으로 ‘젠센기념관’을 건립했다. 이 건물은 정동제일교회에 헌증되었다. 그후 선교사직을 정년퇴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뉴저지 주 매디슨에 살다가 1998년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딸 클레어도 서울 외국인 학교에서 오랬동안 교사와 교장을 지냈으며, 그후 장애인복지를 위해서 일하다가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

  이전글 : 영광스런 가문 젠소선교사 가족. John ...
  다음글 : 구약성서 번역의 선구자 피터스 가족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