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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구약성서 번역의 선구자 피터스 가족 조회수 : 2910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10-17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구약성서 번역의 선구자 피터스가족. Alexander A. Pieters

알렉산더 A. 피터스 선교사의 가족은 구약성경 번역과 의료분야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겼는데, 모두 양화진의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 엘라자베스 C. 피터스 선교사는 미국 시카고의 매코믹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던 유태계 러시아인 알렉산더 A. 피터스와 결혼하여 1904년 미국 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선교사업에 활동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건강이 약화되고 폐결핵을 앓았는데, 러일전쟁이 소강상태에 있을 때 필리핀 마닐라로 갔다가 일본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폐결핵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1906년 서울에서 34세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그의 남편 A. 피터스는 1930년 “엘리자베스 추모사업”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결핵환자 진료소를 마련하였으며, 크리스마스 실 운동을 전개했다.

| 에바 필드 피터스 여성 의료선교사는 미국에서 출생하여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1897년 미국 북장로회 여성독신 의료선교사로 내한했다.

그녀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하던 중 1908년 피터스와 결혼했다. 그후 이들은 10년 간 황해도 재령에서 기독교 교육과 의료 선교활동을 계속했는데, 에바선교사는 수학교과서는 펴내기도 하였다. 그들은 리차드와 루벤 두 아들을 낳았고, 그아들들은 평양외국인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에바선교사는 1922년 선천으로 이동 한국교회를 위하여 새로운 찬송가도 편집하여 발행했다. 그러나 불치의 암으로 인하여 그가 봉직했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1932년 64세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 유태인으로 러시아에서 출생한 얄렉산더 A 피터스 선교사는 1895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그후 미국성서공회의 권서로 채용되어 1895년 내한하였고, 3년간 한국 부총무로 활동하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그는 서울근교와 호남과 충청지역을 순회하며 성서를 판매하면서 1897년부터 시편번역에 착수하여 1898년에 12월 6일, <시편 촬요>라는 제목으로 한국 최초의 구약성서를 발행했다. 이 성경은 예약에 의해 1,500부가 인쇄되었는데, 그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또한 시편을 찬송가로 여러 편 작곡하였다. 예를 들면 기도와 간구를 위한 찬송가 479장(내가 깊은 곳에서)은 시편 130장을 운률화하여 작곡한 것이다. 그는 구약 성서번역위원과 성서개역위원회 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13년에는 황해도 재령, 평북 선천등지에서 활동하며, 구약성서 완성에 공헌했다.

1941년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58년 6월 29일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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