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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 땅에서 최초의 여성목사가 된 채핀가문의 선... 조회수 : 3146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10-29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한국 땅에서 최초의 여성목사가 된 채핀가문의 선교사들-

양화진 제1묘역에는 평생을 여성 교역자를 양성하는 일과 사회봉사에 헌신한 채핀(Chaffin) 가문의 사람들이 안장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이방 땅 한국을 위해서 헌신했으며, 이 땅에 묻힌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1.
빅터 D. 채핀은 1881년 미국에서 출생하여 안나 채핀과 결혼하였으며, 1913년 4월 23일 미국 감리회 선교사로 부인과 딸, 그리고 처제(로사 베어)를 동반하여 내한했다.
한국에 도착한 후에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소속을 바꾸어 활동하였는데, 서울 서부지역과 경기도의 고양, 김포지역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와 함께 활동하면서 새문안교회, 양평동교회 등 여러 교회를 순회시무를 하였다.

선교활동 중 건강이 악화되어 1916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였는데, 그의 죽음에 대하여 장로교회의 기록에는 “원두우(언더우드) 목사와 동사목사로 시무한 채피득(채핀) 목사가 세상을 떠나 섭섭하고, 슬프고, 막막한 일이며 애도한다”고 기록되었다.

2.
한국 최초의 감리회 여성 목사로 활동한 안나 B. 채핀은 빅터 채핀과 결혼하여 딸을 낳은 후 남편을 따라 선교사로 내한했다. 1916년 남편과 사별한 후 감리회 부인성경학원 교사가 되었으며, 1918년 앨벗슨의 후임으로 원장이 되었다.

그후 1차 안식년을 맞아 뉴욕 성서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다시 돌아와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고, 2차 안식년 에는 콜럼비아대학에서 종교교육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리집>의 편집인과, <절제>의 발행인으로 문서선교에도 힘썼다.

1931년 양주삼 총리사 집례로 개성에서 한국 최초 여성 목사가 되었으며, 협성신학교의 부교장으로 여성교역자 양성에 힘썼고, 만주신학교를 설립, 초대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1940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 출국했다가, 1946년 다시 돌아와 여선교회 사업을 재개하였으며, 은퇴한 여전도인을 위한 안식관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은퇴한 뒤에도 감리교 해외 구제위원회 사업국장으로 봉직하고, 이화유지재단이사장을 역임했다. 일평생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오직 선교와 여성교역자 양성에 헌신하던 중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정되었다.

3.
로사 B. 베어(Bair, Blanche Rosa)선교사는 언니인 안나 채핀을 따라 내한하여 해주, 공주, 인천지역에서 전도 및 여성사회사업에 종사했다. YMCA 영어학교 교사, 태화여자관 관장으로 일하던 중 안나 채핀과 같은 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후 천안지방에서 여성사회사업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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