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사람들
•홈  >  쉴만한물가  >  믿음의사람들

목록보기

  제  목 : 한국 YMCA창설자, 야구, 농구의 개척자 질레트가족1 조회수 : 3222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11-20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한국 YMCA창설자, 야구, 농구의 개척자 질레트가족 ①

*****************************************************************************************

양화진에는 야구, 스케이트, 농구 등의 스포츠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보급한 질레트 선교사의 가족 묘지가 있다. 1905년 아기로 사망한 베이비 질레트는 묘역의 중심부에 위치하지만 방문객의 발길이 멈추거나 헌화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으며, 묘지가 너무 허술하고 황폐되어 있다. 묘비에는 “필립 L. 질레트와 버타 질레트 선교사 부부의 어린 딸. 1905”이라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한국 체육 발전에 위대한 초석이 된 필립 L. 질레트 선교사는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1872년 10월 21일 출생했다.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 YMCA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콜로라도 대학을 졸업했다. 예일대학에서 1년 반 동안 수학한 후 같은 대학에서 YMCA의 전도담당 부목사로 봉직하던 중 미국 YMCA 국제위원회에 의하여 한국 YMCA 창설 책임자로 선임되어 내한하게 되었다.

그는 서울에서 2년간의 준비와 노력 끝에 1903년 10월 28일 유니온 클럽에서 YMCA를 창립하고, 초대 총무가 되었다. 창립 총회 직후 질레트는 엘렌 버타와 결혼하였으며, 수산 등 두 딸을 낳았다. 그후 12년 간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기독청년회의 조직 등 기초를 확립하고, 우리나라 체육 특히 야구, 스케이트, 농구 등의 분야에서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한국 체육의 발전 역사는 YMCA 체육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질레트 선교사의 비중과 역할은 대단히 크다. 그는 태화관에 사무실을 정한 후 체육실, 교실, 친교실을 겸한 강당을 꾸몄다. 그리고 영국에서 성공회 주교로 내한하여 초대 체육위원장(제2대 YMCA 총무)으로 봉직한 터너 선교사와 함께 체육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교역자와 지도자를 양성하기도 했다.

실내 체육실과 운동장을 이용하여 축구, 농구, 배구, 야구, 육상, 체조 등 서양의 각종 스포츠를 회원들에게 가르치며 보급했다. 1906년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축구 경기 등 야외경기를 56회나 실시하였으며, 실내 운동도 33회를 실시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야구는 1905년, 질레트 선교사가 처음 도입하여 YMCA 회원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 한국 야구의 시작이다. 얼마전 YMCA야구단이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무렵 야구는 타구라고 불렀다. 1906년 2월 17일 YMCA 팀과 독일어학교 팀간에 훈련원 마동산에서 있었던 경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 경기로 전해진다. 스케이트 운동도 역시 질레트 총무에 의하여 1905년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농구 또한 질레트에 의하여 1907년에 기독청년회 회원들에게 지도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 1907년 7월 23일 YMCA 체육실에서 ‘동경유학생 팀’과 ‘서양외국인연합팀’의 경기는 우리나라 농구 역사의 서막이라 할 수 있다. (계속)

 "

  이전글 : 호남지역 선교의 주역, 존 F 프레스톤
  다음글 : 한국 YMCA창설자, 야구, 농구의 개척자 질레트가족2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