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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해 헌신한 저다인선교사.. 조회수 : 2698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1-22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한국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해 헌신한 저다인선교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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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L 저다인 선교사의 아들 조셉은 1915년 11월 19일 한국에서 출생하였지만 바로 다음날 사망하였다.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주창한 선교사의 귀한 아들로 태어났지만 한국의 기후 풍토와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루만에 하나님의 품에 안긴 것이다. 이처럼 저다인 선교사 부부는 어린 아들을 양화진에 묻으면서까지 한국교회 부흥을 위하여 마음을 다해 헌신했던 것이다.

저다인선교사는 1870년 7월 13일 미국 앨라배마에서 출생하여 조지아 대학을 졸업한 후 조지아주의 엡윗청년회 회장으로 평신도운동을 하였고, 1902년 조지아 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그해 11월에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1903년-1906년까지 원산과 개성에서 하디와 함께 부흥운동의 중심인물로 사역하면서 성도들에게 성령을 체험하게 하였으며. 한국교회에 부흥의 불씨를 일으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확산시킨 선교사이다.

박명수의 <한국교회 부흥운동 연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저다인은 1906년 1월 함흥의 캐나다 장로교회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다. 그는 조용하고 신사적인 방법으로 설교했는데, 그의 설교는 성경의 직접적인 인용이 많았다. 그에게는 놀랍고도 묘사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죄의 확신과 온전한 순종에서 오는 행복, 하나님에 대한 찬양, 성령의 세례와 치유에
관한 것들이다.”

저다인은 세계적인 부흥운동에 대하여 라는 선교잡지에서 “영국의 웨일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놀라운 역사는 호주에서도 나타났고, 미국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대각성운동이 같은 시대에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도 부흥사경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집회를 열었는데, 성경을 읽고 공의와 절제와 심판, 그리고 죄의 무서움과 뉘우침의 필요성을 전했다.

1908년에는 서울로 옮겨 데라우찌 총독 암살미수사건(105인 사건)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한국기독교인들의 변호를 자청하여, 무고하게 억압받는 피의자들의 석방을 도왔으며, 1909년에는 남감리회 한국선교회의 제13대 연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서울 YMCA 제3대 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15년부터 1919년까지는 대한성서공회 회장으로 봉직하였다. 그는 수많은 부흥회와 설교, 그리고 전도활동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 북감리회의 연합을 위해 활동하였고, 감리교 신학교의 교수로도 10년간이나 봉직하였다.

1939년 은퇴한 후 조지아에 거주하다가, 1950년 플로리다에서 별세하였다. 저디인은 한국교회의 영적부흥과 사회의 계몽을 위해 헌신한 영적인 거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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