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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 성결교회 설립의 주역인 칼보른과 그의 자손들 조회수 : 2655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1-22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한국 성결교회 설립의 주역인 칼보른과 그의 자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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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보른 1세
E. A. 킬보른은 1865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출생하여 독실한 감리교인으로 성장했다. 시카고에서 전신기술자로 일하다가 무디 성서학원을 졸업한 후 목사가 되었고, 쥴리아와 결혼하여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1902년 카우만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전도사업과 성서학원을 운영하다가 1905년 11월에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 OMS)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07년에는 카우만 김상준, 정빈 등과 한국에 2주간 머물면서 서울에 "동양선교회복음전도관"을 마련하였다.

그후 OMS의 한국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를 정식으로 조직했고, 교육과 문서선교에 헌신하였다. 1924년에 카우만 총재가 별세하여 후임 총재가 되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928년 4월 15일 64세로 별세하였다.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수백 만금의 돈을 출납하였으나, 나의 소유는 송곳 한 개 박을 땅이 없고, 집도 없고, 화려한 가구도 없고, 생활비로 쓰다가 남은 돈 60$ 밖에 없는 것이 나의 기쁨이요 자랑이다" 라는 마지막 일기로 그의 검소한 생활 기록을 남겼다.

킬보른 2세
E. A. 킬보른의 외아들이며, 버르(bud)라고 불리운 E. L. 킬보른은 1922년 내한하여 동양선교회 선교사 로 활동하면서, 서울성서학원 교수,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고문과 이사 및 부총재로 활동했다. 신사참배 강요에 반대하고 중국 선교사업에도 기여하였다.

하젤과 결혼하여 장남인 에드윈 W. 킬보른과 쌍둥이인 J. 엘와, 어네스트 등 3형제를 두었는데, 이들은 서울과 중국의 미국인학교와 미국 켄터키 애즈버리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모두 OMS 선교사가 되었다.

킬보른 3세들
킬보른 3세에는 에드윈, 엘머, 어네스트 등 3형제가 모두 동양선교회 선교사로 활동했다. 에드윈 W. 킬보른은 1949년 내한하여 한국에서 서울신학대학 교수와 제2대 학장, OMS 부총재 등으로 1973년까지 활동했다. 부인 에드나의 아버지 스탠리 하비랜드 마틴은 만주 성 앤드류병원 의사로 있으면서 일본의 압박으로 만주에 이주한 한국인들을 잘 돌봐준 고마운 인물이다.

엘머 킬보른은 1949년 내한하여 서울에서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인도에서 활동하다가 양화진에 묻혔다.
어네스트 킬보른은 일본과 중국에서 OMS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킬보른 4세 캐더린
에드윈 W. 킬보른의 딸로 태어난지 이틀만에 사명한 캐더린 A. 킬보른의 묘비에는"In his arms"라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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