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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헌신한 성공회의 선교사들 조회수 : 2722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3-04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헌신한 성공회의 선교사들************************************************************************************************
양화진 외국인 묘지공원에는 한국과 한국인을 위하여 헌신한 성공회 선교사들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한국에 내한한 최초의 성공회 선교사는 1890년 9월 29일 영국 캔터베리 대교구의 코프주교였으며, 양화진에 처음으로 안장된 성공회 선교사는 터너 제2대 주교였다.

양화진에는 차드웰 주교와 구드윈 주교의 묘지, 그리고 허지스, 카트라이트 신부와, 노라, 웹스터, 로이스 수녀 등도 묻혀 있다. 그외에도 성공회출신의 외국인과 한국인의 묘가 있고, 2살의 어린나이로 사망한 마크와 묘비가 없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어린이의 묘가 수십기에 이른다.

1. 한국성공회 자립의 초석이 된 아더 B. 터너 주교는 1862년 영국 솔스베리에서 출생하여 옥스퍼드의 키블대학을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된 후 1896년 영국성공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서울대성당에서 코프 주교를 보좌하였으며, 공덕동성당과 인천성당에서 봉직하였다. 1905년에 제2대주교로 서품된 터너는 겸손한 인격과 통솔력을 발휘하며 수원과 진천까지 선교범위를 확장하고 교회의 자립에 힘썼다.
성공회가 운영하는 병원을 비롯하여 고아원과 학교기관도 자립시켰다. 교회마다 부설학교를 설립하여 여성의 기본상식과 실업교육을 실시하고, 교회 조직과 토착적인 성공회의 전통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YMCA 초대이사, 체육위원회 위원장, 황성기독청년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에 축구를 처음으로 보급하였으며, 축구선수를 양성한 인물이기도하다. 1910년 인천의 성누가병원에서 신병으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2. 한국전쟁을 함께 겪으며 교회를 지킨 아더 E. 차드웰 주교는 1892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하여 런던대학과 처선트신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1926년 영국 성공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성공회 사제로 활동하였다. 1940년에는 일제에 의하여 평양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강제출국되어 스리랑카와 영국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후 다시 내한한 차드웰선교사는 청주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6․25 한국전쟁 중에도 출국하지 않고 교회를 지켰으며, 그후 주교로 서품되어 헌신하던 중 1967년 부산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3. 성서원전과 고전어의 대가, 찰스 구드윈 주교는 1913년 미국 코네티컷에서 출생하여 성바올학교와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을 수료한 후 미국의 케임브리지성서공회 신학교를 졸업하여 사제로 서품받았다.
성서원전과 고전어의 대가인 그는 1960년 대한성공회 주교로 내한하여 부산과 서울에서 활동하였고, 성공회대학과 연세대학교에서 성서원전과 고전어를 강의하며, 성서원어와 한국어 비교연구에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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