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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결핵 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산 셔우드 홀 조회수 : 2899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3-16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결핵 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산 셔우드 홀 선교사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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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에는 홀(Hall) 일가의 삼대가 묻혀있다. 제임스 홀, 로제타 홀, 셔우드 홀을 비롯하여 1991년 10월 5일 대한결핵협회 장으로 안장된 메리안 B. 홀도 있다.

제1대 윌리암 제임스 홀은 최초로 평양 의료선교사로서 광성학교를 설립했다. 부인 로제타 홀은 맹인 점자교육의 선구자로, 평양에 최초로 병원을 건립했다. 제2대 셔우드 홀은 한국최초 결핵요양원 설립자이며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다. 그 부인 메리안 버텀리 홀도 결핵요양원과 크리스마스 실의 선구자이다.

미국에서 유복자로 출생하여 어머니(로제타) 품에 안겨 한국에 왔지만 3살의 나이로 양화진에 묻힌 에디스 마가렛과, 또 한 사람은 셔우드 홀의 쌍둥이 중 프랭크가 하루를 살지 못하고 이 땅에 묻히므로, 여섯 식구가 묘역을 형성하고 있다.
셔우드 홀은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00년 6월 평양에 있는 외국인학교의 첫번째 입학생으로 베어드 등 4명과 1908년까지 수학했다.

1911년 미국 오하이오 주 마운트 허몬학교를 거쳐, 1919년 마운트 유니온대학을 졸업하고, 1922년 메리안과 결혼했다. 1923년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24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홀츠빌 서퍼크 결핵요양소에서 결핵을 전공했다. 1925년 8월 미국 감리회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어 1926년 4월 19일 부인 메리안 버텀리 와 함께 내한하였다.

1926년 7월 해주구세병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의창학교 교장직도 겸임하였다. 운산금광(동양연합광업회사) 담당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하기도 했으며, 해주 왕신리에 폐결핵 퇴치를 위하여 한국 최초로 ‘해주구세요양원’을 설립했다.

결핵요양원의 필요성에 대하여 셔우드는 “결핵은 다른 나라에서는 20명에 한사람 꼴인데 한국에서는 5사람 중 한사람 비율로 희생자가 난다. 일단 병균이 침투하면 한국인은 병을 피할 수 있는 희망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결핵은 불치의 병으로 <부끄러운 병>이며, 악귀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이 운명적으로 받는 벌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요양원은 치료뿐만 아니라 계몽과 교육 목적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했다.

거의 불치병으로 인식하는 결핵 환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치료에 확신을 심어주어 효과가 있다. 그는 “시범농장을 통하여 환자들은 지루한 회복기 동안에 육체적으로 덜 힘든, 현대적 영농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치료에 도움이 되고, 특히 농민 환자는 퇴원 후 고향으로 돌아가 현대식 농사법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했다.
셔우드는 시범농장 운영을 통하여 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식료품을 제공하고, 퇴원 후 경제적 자립 능력 배양과 영농기술을 보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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