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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결핵 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한 셔우드 홀 조회수 : 2752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3-16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한결핵 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한 셔우드 홀 선교사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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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우드 홀은 결핵치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크리스마스-실(Seal) 운동을 계획하고 1932년 12월 3일 남대문을 그린 ‘실’을 한국 최초로 발행했다. 남대문은 한국의 상징이며 결핵을 방어하는 성루로 나타낸 것이다. 원래 첫 도안은 거북선에 대포를 배치하여 한국의 적인 결핵을 향해 발포하는 그림으로 제작하였으나. 거북선에 패한 일본의 반발이 문제시되어 변경되었다. 그 후 크리스마스-실 운동은 성공을 거두며 계속 발행되었다.

그러나 1940년, 서기로 표기한 연호를 일본 연호로 바꾸라는 압력 때문에 실 발행 9년째 되는 해에 수정되기도 했다. 이것이 셔우드에 의한 마지막 실 발행이었다. 그후 1938년 5월 1일부터 효과적 결핵 예방운동 차원에서 <요양촌>이라는 월간지도 발행했다.
크리스마스-실 운동은 시편 번역자 피터스 부부도 동참했다. 1939년 피터스 부인은 부회장으로 피터스 목사는 사업부장을 맡았다.

1940년 8월에는 ‘화진포’ 그의 별장에서 영국 신부(캐럴)를 만나고 동해안 지역 사진을 촬영했다는 협의로 간첩 누명을 쓰고 일제의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3월 또는 일천 달러의 벌금의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을 강제로 떠나야 했다.

1941년 11월 한국을 떠나 인도의 변방 마르다 연합결핵요양원에서 결핵 퇴치사업을 계속하다가 1963년에
은퇴하였다. 캐나다 밴쿠버로 돌아가 노년을 보내다가 1991년 4월 5일 98세로 별세했다.
그의 유해는 리치먼드 사우스 암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룬 후 한국으로 돌아와 1991년 4월 17일 대한결핵협회 장으로 양화진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결핵협회는 1993년 11월 10일 셔우드 홀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양화진에 공적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캐나다인 셔우드 홀은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자라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결핵 퇴치에 헌신할 것을 결심, 토론토의대 졸업 후 역시 의사가 된 메리안 버텀리와 결혼하여 1926년 함께 감리교 의료선교사로 해주 구세병원에 부임했으며 한국 최초로 1928년에 근대적 결핵요양원을 설립하고, 1932년에는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했다.

1940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 추방 될 때 까지 결핵환자 치료와 실 발행을 계속했으며, 한편으로는 모범농장을 일구어 새 영농기술을 보급하고 의창학교장으로서 교육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2대에 걸쳐 한국인에게 봉사한 공을 찬양해 1984년 한국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울시에서는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남편과 함께 결핵퇴치를 위해서 헌신한 메리언도 캐나다에서 별세하였으나 장례식을 치른 후 유해는 한국으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양화진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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