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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결운동과영어교육으로한국인을위해봉사한... 조회수 : 3204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8-07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성결운동과 영어교육으로 한국인을 위해 봉사한 프렌치선교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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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프렌치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으로 미국에서 봉직하다가 하가드의 후임으로 1916년 제2대 한국 구세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서울에서 추수감사 예배를 마친 후 3회에 걸쳐 지방을 순회하였다. 첫 일정은 충남의 공주(유구)였다. 그는 서울과 지방순회를 통하여 신실한 사관과 교우들이 힘써 희생한 결과로 이루어 놓은 훌륭한 선교 업적을 확인하고 감사했다.
그는 3년간 제2대 한국 구세군 사령관으로 봉직하다가 1919년 인도로 전보되어 한국을 떠났으나 교회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의 임기 중 신설된 구세군 교회는 1916년에 교하, 옥천, 부토리를 비롯하여 1917년 건주리, 천흥, 안성, 김천, 광평, 연안 진남포, 낙평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1919년에는 서울의 삼영, 맹해리, 그리고 수원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특히 사회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육아원개설에 공로가 있다.
그는 성결을 주장하며 ‘성결의 길(이사야 35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여기에는 첫째, 정결의 대로를 통하여 사상과 언어와 행동이 정결하면 언행이 변화되어 선행을 한다고 했다. 둘째, 분명한 탄탄대로를 걷게 되면 곤란이 없을 것이며, 성결한 사람이란 하나님 명령을 잘 복종하는 사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 언약대로 이루어 주신다고 했다. 셋째, 안전대로처럼 우리 마음의 중심이 정결하여야 안전하다고 했다. 이밖에 희락이 충만한 영광스러운 길을 통하여 기쁨을 누리자고 하였다.
양화진 성지에는 구세군선교사 묘역이 특별히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구세군 소속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헌신하다가 순직하여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는 프릭, 코흘러, 리처드, 에이커홈, 힐, 토프트, 위더슨, 홉스 선교사 등 8명이고, 선교사 가족도 실베스터 선교사의 두 아들을 비롯하여 힐의 아들, 프랜치의 아들, 스미스의 딸, 폭스의 아들, 본윅의 딸 등 7명에 이른다. 이들을 국적별로 구분하면 영국인이 9명으로 가장 많고, 스웨덴 3명, 미국, 호주, 남아공이 각 1명으로 모두 15명에 달한다.
구세군 선교사 가족 가운데 링컨 프렌치의 삶은 특별하다. 그는 청년기가 시작되는 18세 때에 그의 아버지가 미국에서 한국 사령관으로 전임되었을 때, 여동생 등 4명의 가족이 1916년 10월 2일 서울에 도착하여 서울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하였다. 아버지 조지 프렌치가 1919년 11월 인도로 전임하게 되어 한국을 떠난 후에도 그는 한국에 계속 머물러 독립생활을 하면서 한국인을 일깨워 주는 어학선생으로 봉사하였다.
결국 한국의 기후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 생활 7년 만에 25세의 나이로 1923년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장례식은 정동교회에서 스티븐스 구세군 사령관 인도로 진행되었으며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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