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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 최초의 선교사 자녀로서 여성교육에 헌신한 A R 조회수 : 2459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8-30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한국 최초의 선교사 자녀로서 여성교육에 헌신한 A R 아펜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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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는 한국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와 엘라 다지 부부 사이에서 1885년 11월 9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평양을 횡단하여 한국 최초로 태어난 서양인 선교사의 자녀이다.

A. R. 아펜젤러는 1886년 4월 유아세례를 받고 한국에서 유치원 과정을 마친 다음 어린 나이로 미국으로가 교육을 받았다. 1902년 그의 아버지가 성경번역위원회 참석차 목포 항해 중 순직할 때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1909년 메사추세츠 주 웨슬리대학을 졸업한 후 모교인 랜카스터 사립학교에서 독일어와 역사 교사로 봉직하던 중 1915년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한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한 후 이화학당 교사로 부임하여 영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1920년 이화학당 당장서리로 임명되었고, 1921년 10월에는 학당장에 취임하였다. 1925년 4월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켜 초대교장에 취임했고, 이때부터 전문학교와 고등보통학교가 분리되었다.

이화여전 교장 시절에 신촌에 5만여 평의 땅을 마련하고 1933년 새 교사를 지어 이화동산을 건립하였다. 전택부의 <근대식 교육의 개척자>에 의하면 그는 1928년 12월 교사(校舍) 신축비 목표액 45만 불의 모금을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2년간 모금에 성공하고 1931년에 돌아왔을 때 동창회가 베푼 환영회에서 “내가 2년전 미
국으로 떠날 때에는 어찌나 짐이 무겁고 감당키 어려웠는지 어떤 큰 힘이 나를 누르는 것 같아서 내가 타고 가는 배가 파선을 했으면 시원하겠다고 까지 생각했습니다.”라고 그때의 심정을 고백했다고 한다.

1932년에는 기독교 조선감리교회 목사로 임직되었다. 그는 새 교사를 짓고 더욱 흥이 나서 학교 발전에 노력했다. 몇 해 동안 벅찬 일을 치러 낸 뒤, 1935년 안식년을 이용하여 미국으로 가 1937년 6월에는 보스턴대학에서 명예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그녀는 25년간 이화에 봉사하고 세계 굴지의 대학으로 발전하는 터전을 마련한 후 신임하던 제자 김활란에게 1939년 4월 교장자리를 인계하였다. 이화학당에서 평생을 처녀로 일하면서 3·1운동 때에는 신앙과 조국애로 나라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인재 육성에 필생의 노력을 다했다.

1950년 2월 20일 아침 ‘반석위에 집을 지으라’는 주제로 예배를 인도하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65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이 땅에서 나고, 이 땅에서 자라고, 이 땅에서 백발이 되어, 최후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위하여 교육에 헌신한 것이다.
평소에 ‘죽어 한국 땅에 묻히기를 간절히 소원’하였던 그녀는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던 한국인의 손에 의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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