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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남,북감리교회의통합을위해헌신한클라렌스웜스선교사 조회수 : 2281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8-30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남, 북감리교회의 통합을 위해 헌신한 클라렌스 웜스선교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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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렌스 N. 윔스는 1875년 2월 18일 미국 조지아 주 우스타놀라에서 출생했다. 1899년 아칸소 대학과 에모리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칸소와 켄터키에서 10년간 교직에 있다가 선교사가 되었다.

클라렌스와 낸시부부는 큰 아들 데이비드, 둘째 아들 클라렌스 Jr.와 함께 미국 남 감리회 선교사로 1909년 내한하였다. 첫 부임지는 개성이었으며 동부교회와 서부교회 목사로 봉직하였고,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장과 개성지방 감리사 등으로 23년간 활동 하였다. 이때 윔스 부부는 셋째 아들 벤자민과 넷째 아들 빌을 낳았다.

그 후 선교지역을 원산으로 옮겨 원산성경학원, 농촌교회사역자 양성회, 광명소학교 등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7년간 봉직하였다. 원산 선교활동 중 1939년 9월 22일, 원산 중앙교회에서 ‘한국 선교 3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의 주요 업적은 교역자 양성에 힘썼으며 유능한 학생을 선발 미국 유학을 주선하고, 40여 교회를 건축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또한 1930년 남 감리회 조선연회 대표자로서 남, 북 감리회 통합에도 공로가 있다.

낸시 윔스는 남편의 선교사역을 내조하면서 선교센터에서 독자적으로 재봉과 요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윔스 가족은 1940년 안식 휴가를 미국으로 떠나면서 다음해 다시 돌아올 것을 계획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윔스 선교사는 1952년 2월 26일 조지아 주에서 별세했다.

그의 네 아들들은 성장하면서 모두 한국에서 외국인학교에 다녔고, 한국선교사, 미 군정청 고문, 주한 미국대사관 담당관 등으로 한국에서 봉직하였다. 장남 데이비드는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헬렌과 결혼하여 1930년부터 1934년까지 철원에서 선교사로 있었으며, 2남 클라렌스 Jr(주니어)는 2차 대전 때 장교로 복무하다가 미 군정청 고문관으로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특히 헐버트 선교사의 한국 역사책 두 권을 편집하므로 한국역사 연구에 공헌하였다. 양화진 어린이 묘역에는 그의 아들 존이 1947년 출생하여 같은 해 6월 1일 사망하여 묻혀있다.

3남 벤자민 B. 윔스는 서울에서 한국학 전문가로서 많은 활동을 하다가 부인과 함께 양화진에 묻혔다. 4남 빌은 조지아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MIT와 국제협동기구에서 1958년부터 1963년까지 5년간 한국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특히 3남 벤자민은 서울의 외국인 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였고, 1947년에는 ‘미-소공동위원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48년에는 ‘미국의 소리’ 방송을 담당하고, 1965년부터 1972년까지 UN군 사령부에서 활동했다. 정신문화연구원 교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부인이 죽어 양화진에 묻힌 후 한국인 신윤희와 재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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