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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미간호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한국최초의 간호사.. 조회수 : 3368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9-14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미간호 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한국 최초의 간호사, 야곱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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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P. 야곱센은 1868년 독일에서 출생하여 성장과정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에서 간호학을 공부한 뒤 해외선교사로 지원하면서 “외국에 나가 병원도 없고 병자의 간호도 할 줄 모르는 불쌍한 백성들에게 평생을 몸과 배운 학문으로 헌신하겠다”고 다짐할 때였다. 이 때 한국에서는 1894년 9월말 에비슨이 미국 선교본부에 한국인 간호사를 훈련시킬 수 있는 전문가 2명의 파송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1895년 4월 6일 한국 최초의 훈련된 간호사 야곱센과 여의사 화이팅이 내한하게 되었다. 이들이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인 간호사를 훈련시키는 임무가 있었다. 이 무렵 제중원은 국립병원 체제에서 선교기관 운영 체제로 근본적으로 개편되었고.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병원운영의 재정적 책임을 지면서, 병원 근대화에 힘쓰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야곱센은 구리개에 있던 제중병원에서 에비슨 병원장을 도와가며, 강인한 의지와 헌신적인 봉사로써 밤낮 고생하며 환자들에게 따뜻한 간호의 손길을 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올바른 행실을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를 품어냈다. 그는 간호사역에 충실하면서 한국의 간호교육의 기틀을 다지는데도 힘썼다.

그리고 청·일 전쟁으로 인한 환자를 돌보고, 1895년 여름 서울에 만연된 콜레라 방역사업에 에비슨과 진력다하여 일찍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결국 과로와 열악한 생활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건강이 악화되어 이질에 걸렸다. 뒤따라 간농양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1897년 1월 20일 서울에서 29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여 1월 22일 H. G. 언더우드 선교사 집에서 장례식이 집례 된 후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 후 야곱센의 간호사 양성사업은 1897년 10월에 내한한 실즈에게 승계되었다. 실즈는 야곱센의 뒤를 이어 간호사 교육에 역점을 두고 간호사 제도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면서 1937년까지 봉직했다. 1897년 1월 21일자 독립신문은 야곱센의 한국 활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이 여인은 구주 예수 크리스도의 이름을 조선에 빛나도록 일을 하다가, 더러운 것과 부정한 음식과 깨끗지 못한 물을 어쩔 수 없어 조선서 먹고 지내더니, … 간경에 종기가 생겨 학문 있는 의원들이 힘껏 구완하려 하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목숨인즉 하나님이 찾아 가신 것이라. … 부인의 장사예절을 내일(22일) 오전에 원두우(언더우두) 교사 집에서 거행 할 터인즉, 누구든지 평일에 이 여인을 알던 이는 원교사 집으로 와서 장사 예절을 참례하고, 마지막 한번 조선 백성 사랑 하든이 얼굴을 보고, 산소는 양화진 외국 매장지라 거기까지 가서 참례하고 싶은 이는 다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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