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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친 전도자 , 요한 웨슬리 조회수 : 2867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5-10-16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친 전도자 , 요한 웨슬리 John Wesely ②

요한 웨슬리는 아버지 사무엘목사를 대신하여 고향에서 잠시 동안 설교사역을 하였는데, 그의 설교는 역시 신통치 못하여 신자들은 또 졸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있던 동생 찰스웨슬리는 신앙이 뜨거워져 매주일 한번씩 몇몇 친구들을 모아 놓고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후 동생의 요청으로 요한 웨슬리가 이 모임을 주관하게 되었고, 날로 성장해 갔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학교 안에 퍼져 나갔다. "우리 대학교안에 불이 붙었다, 성경말씀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그들이야말로 메도디스트들이다" 메도디스트(methodist)는 원칙주의자라는 뜻인데, 요한 웨슬리가 지도하는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들을 그대로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라 부르는데서 시작하여 오늘의 감리교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모임은 ‘거룩한 클럽"이라 불렸는데 한결같이 기도와 성경공부 그리고 구제에 헌신하였다.

얼마 후 버튼박사의 추천으로 요한 웨슬리는 동생과 "거룩한 클럽"회원인 벤자민 잉헴과 함께 1735년 10월 18일 미국을 향하여 그레이브샌드 항구를 출발하였다. 이때 요한 웨슬리는 일생에 또 한번 큰 변화를 겪게 되는 사건을 만나게 되었다. 시몬즈 호가 넓은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던 어느 날이었다. 캄캄한 밤, 순식간에 배는 하늘이 터진 듯한 소낙비와 무서운 파도 속에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거센 파도소리를 뚫고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웨슬리도 한쪽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은은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 찬송을 듣는 웨슬리는 너무나 놀랐고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은 모라비안 성도들이었다. 이를 통해 웨슬리는 자신이 삶 속에서 주님의 구원을 믿지 못함을 깨닫고 후에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았다.
4개월 만에 미국에 도착한 웨슬리는 목회를 시작하였지만 여자문제 때문에 미국에서의 사역에 종지부를 찍고 2년 만에 영국으로 되돌아 왔다. 그는 이 모든 사건을 통해 겸손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되었다.

이후 1738년5월24일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 사건"이라 불리는 가슴이 타오르는 뜨거운 거듭남의 체험을 하고 이때부터 무서운 열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맨 처음 설교는 옥스퍼드대학생들 앞에서 하였다. "확실한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설교내용의 전부였다. 사람들은 가슴을 움켜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회개하였다. 뉴게이트의 감옥에서도 "거저 주시는 구원"이라는 제목으로 죄수들 앞에서 설교하였다. 웨슬리가 믿음의 구원을 외치자 여기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데굴데굴 굴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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