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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친 전도자 , 요한 웨슬레 조회수 : 2827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5-11-06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친 전도자 , 요한 웨슬레 John Wesely ③

웨슬리는 가는 곳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관하여 설교했고, 그의 설교는 칼날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박혀들었고, 마른 장작을 태우는 뜨거운 불길과 같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러자 국교회 목사들이 웨슬리를 비웃으며 ‘구원이 믿음으로만 된다면 교회제도나 성찬식은 필요 없는가?’를 반문하였고, 모든 교회에서의 설교를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웨슬리를 비방하는 근본이유는 웨슬리가 당시 교회의 사치와 목사들의 타락을 사정없이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기로 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친구 화이트필드의 도움으로 그는 킹스우드지방의 광부들에게 넓은 언덕에서 즉석 설교를 하였는데, 그의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 불덩어리였다. 막혔던 화산이 터지듯이 그의 입에선 불덩어리가 뿜어 나왔다.

처음 모인 사람들이 200명 정도였는데, 5번째 설교를 할 때는 1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다음엔 1만 8천명이 몰려왔다. 그때부터 말씀에 굶주린 사람들이 사방에서 설교를 요청해 왔다. 어떤 지방에서는 2만 명이 넘는 숫자가 집회장을 가득 메우기도 하였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홍수를 이루었다.
1739년 11월 11일, 웨슬리는 낯선 두 신사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대포공장을 개조하여 훌륭한 예배당을 만들어 웨슬리에게 기증하였는데, 최초의 예배당이 생겨난 것이다. 이 예배당은 사람을 죽이는 대포를 만들던 공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말씀을 선포하는 공장으로 바뀌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감리교단이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모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자 그 많은 사람을 다 돌볼 수 없었던 웨슬리는 각 지역마다 "속회"라는 소그룹을 조직하여 일을 나누어 맡겼다. 이런 조직적인 체계를 이루자 그 후에는 사람이 아무리 늘어나도 아무런 문제없이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다. 이 무렵 비로소 "감리교도"라는 말을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요한 웨슬리는 감리교도들을 이끌며 신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여 가르치며 설교하였다.
모임이 더욱 커지자 영국 국교회에서는 깡패를 동원하여 본격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모임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때로는 웨슬리가 깡패들에 의해서 납치당하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변화시키기도 하였다.

웨슬리는 "전 세계는 나의 교구이며, 나의 일터"라고 외치며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였고,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단 한 사람만 남아있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땅 끝까지 달려갈 것이다."라고 말하며, 선교를 위해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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