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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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알 수 없어 홀로 방황하는 / 안에 활활 타오르는 이 끝없는 갈증 /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방황과 포기 / 홀로 펄럭이는 영혼의 내 낡은 장막 / 훌훌 벗고 주님 앞에서 울며 걸었던 / 13일간의 아름다운 땅의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성서의 세계를 이곳에서 만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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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글모음 조회수 : 3314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15-01-30

숨막히게 아름다운 땅



내가 나를 알 수 없어 
홀로 방황하는 

안에 활활 타오르는 
이 끝없는 갈증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방황과 포기 

홀로 펄럭이는 
영혼의 내 낡은 장막 

훌훌 벗고 당신 앞에 
울며 걸었던 13일간의 

숨막히게 아름다운 땅

이집트 / 애굽


세계에서 제일 긴 강 나일은  적도 지방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하여 6,671 km 를 흘러 지중해로 들어간다.

강은 바다에 닿기 1,000km 쯤 전  '나일의 제1폭포'를 통과하는데 이집트 역사 는 대략 나일의 이  마지막 1,000km 구간,  즉 나일의 제1폭포 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유역에서 지난  6,000년동안 일어난 일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성경은 다양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나는 지금 바로 그 성경의 현장에 서 있는 것이다.
5천년을 뛰어 넘은 바로 그 역사의 자리에... 

 

홀로 살아계신하나님


세계4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그곁을 지키고 서 있는 스핑크스는 듣던 그대로 대단했다. 나의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아갈 정도였다. 나는 그들 곁에 아주 오랬동안 서 있었다. 그 후에야 비로소 내가 이집트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과학과 현실, 그리고 신앙을 들먹여가며 이 가엾은 수시학을 조롱했던 모든 일이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한참이 지나 정신을 차린 후 그 모든 것이 사라진 역사의 현장에서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서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
주께서 싸우신다.
하나님이 행하신다.
아우성치지 말고,
몸부림치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
신앙의 싸움은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를 위해서 
싸워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길을 예비하신다.
바다 가운데 난 길… 
어둡고 깊은 절망,
고독이 눈물 되어 흐를 때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홍해에서 

오늘도 계속되는 마라의 쓴물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와의 격렬한 투쟁을 통해서 
애굽을 나와서 홍해를 건넜다.
그리고 광야로 들어섰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마라!!! 
쓰다!!!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마라를 마시며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였고 
나는 오늘 이곳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쓴 물로 받고 있다.

쓴 물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를 
깊이 묵상하며 다시 묻는다.
 "What are we going to drink?"

마라에서

하나님의 작은 집


쓸모없는 아카시아 
싣딤나무로 만든 하나님의 집 
높은 단상도 없고 
넓은 공간도 없는 
가시나무로 만든 작은 집 
그러나 하나님은 
기꺼이 그 위에 계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움직이고 싶어서 
그의 놀라운 위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작은 보좌로 만족하신 
하나님!!!
주님은 못된 아카시아 
가시로 뒤덮인 
쓸모없는 나를 부르셔서 
나와 함께 생각하고 
움직이고 
일하고 싶으신데 
나는 어느새 도망하여 
고대광실로 
화려한 성전으로 숨어 버렸다.
하나님은 지금도 
아카시아로 만든 
작은 집에 사시는데…

법궤를 만든 싣딤나무

오직 당신 뿐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당신뿐입니다.
내가 어느 곳에 서 있든지 
당신뿐입니다.

바로 당신 
그리고 또 당신 
언제나 
당신뿐입니다.

사방을 다시 둘러보아도 
오직 당신뿐입니다.
오 주님!!! 

시내산 정상에서

아말렉을 무찌르기 위한 기도


제 안에는 지금 
짙은 어둠이 깃들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외롭고 쓸쓸합니다.
저의 마음은 
연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제 안에는 
쓰라린 비통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저를 자유에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나의 모든 날들을 
당신과 사람들 앞에서 
책임감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제게 베풀어주옵소서.
그리하여 드디어 
제 입술로 
주를 찬양하게 하옵소서.
"The LORD is my Banner."

르비딤에서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해 주셨다.
동시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별한 권세를 허락해 주셨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의 복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그분의 사랑을 받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능력이 
사막 한 가운데 
산등성이의 
한 반석 
불가능의 자리에서 
축복의 생수가 쏟아지게 하셨다.
그런데 어찌하여 믿지 못하는가? 


므리바에서


그는 흥해야만 하겠고…

성경은 요한의 모든 삶을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누가는 
그가 여인의 몸에서 난 자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라고
증언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중심 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요한 뿐만 아니라
요한 이후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요한이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드러나게 했던 것처럼
내에게도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는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는 흥해야만 하겠고…
나는 날마다 죽어야만 하겠고…

세례요한 활동지

그러면 사해도 
사랑할 수 있을텐데... 



남을 비난하기 전에 
나의 못남과 어리석음을 
먼저 볼 수 있다면 
결점투성이인 나를 보고 
절망하기 전에 
다시 한번 주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다면 
먼지 낀 창문처럼 흐려진 눈빛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영혼을 
먼저 볼 수 있다면 

영적인 것들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헛된 욕심에 혈안이 된 
세상마저 품에 안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모든 사람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러면 
아, 사해 
그 죽음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텐데... 

사해에서

엔게디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쌔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사무엘상 24:1~3 

주님만이 나의 피할 산성 
나의 반석 
나의 피할 요새 
아멘

말씀과 함께라면  


세상이 아무리 추워도 
말씀을 담고 있다면 
고난의 골짜기가 아무리 깊어도 
말씀과 함께 라면 
이 세상에 아무리 어두워도 
말씀이 빛이 된다면 
죽음의 문전에서도 
말씀으로 오셔서 
말씀과 함께 사시다가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붙들고 있다면 
아 그렇다면 
세상은 여전히 행복할 텐데 

수 천 년을 말씀을 담은 채 
묵묵히 기다려온 
쿰란의 동굴처럼 
묵묵히 말씀과 함께할 수 있다면 
삶은 정말 아름다울 텐데 


이사야서 두루마리가 발견된
쿰란동굴에서

HISTOR     Y 



 


Looking

Over

The  

Horizon

Of History 


마사다에서

갈릴리, 내 영혼의 고향 


나 어느 날 꿈 속을 헤매며 
어느 바닷가 거닐 때 
그 갈릴리 오신 이 따르는 
많은 무리를 보았네 
나 그때에 확실히 소경이 
눈을 뜨는 것 보았네 
그 갈릴리 오신 이 능력이 
나를 놀라게 하였네 
내가 영원히 사모할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 모습을 
나 뵈옵고 그 후로부터 
내 구주로 섬겼네 


찬송가84장 


오 주님 
내 마음의 사나운 물결을 
주님의 말씀으로 잔잔케 하시고 
어둠으로 가득한 영혼에 
“빛이 있으라” 명하소서. 

갈릴리호수의 일출

거기 계시는 주님 



아무 때나 어디서나 
앉은 채로 
우러러 보아도 
거기 계시고 
누운 채로 
하늘을 보다가 
잠이 들어도 
거기 계시는 주님 

내가 겪은 쓰라린 일 
죽고 싶게 괴로운 일 
슬픔에 겨워 몸부림치던 일 
멀리 헐몬산의 만년설에서 
불어 오는 찬 바람처럼 
고난의 바람이 
내 삶에 불어올 때 
그 때에도 
여전히 
그곳에 계시는 주님 
내 주님!!! 

헐몬산이 보이는 갈릴리에서

요단강 


깊은 강 
내 고향은 요르단 건너 편 
깊은 강 주님 
이 강을 건너 
축복의 땅에 가고 싶어라 
오 여보게들 
만물이 평화로운 곳 
저 약속된 땅에 
저 복음의 축제에 
가고 싶지 않은가 
깊은 강 
내 고향은 요르단 건너 편 
깊은 강 주님 
이 강을 건너 
축복의 땅에 가고 싶어라 


흑인영가 '요단강' 
      요단강의 발원지에서

다시 한 번 불덩이 



먹구름 
뇌성벽력 
부딪치고 
번뜩이고 
쏟아지는 불덩이 

이제 무인광야와 같은 
그 흔적 위에 다시 서서 
흐느낌으로 
사모함으로 
다시 한 번 
쏟아지는 불덩이 

절대사랑의 핏덩이 
성령의 불덩이 

갈멜산 정상에서

가이사랴에서 나에게로 



햇 덩어리가 식어가고 있다.
핏빛 불덩어리가 가라앉고 있다.
영겁에 침몰하는 
장엄한 고독이 몰려온다.
지금은 땅 거미길 
어둠 속으로 아득하게 젖어 가는 
바로 그 길.

하나 둘 
또 하나 둘 
그리고 셋… 
그 어둠의 길을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세며 
타박타박 걸었을 
수많은 발걸음들이 
내 가슴속으로 갑자기 달려든다.
헤롯의 도성 가이사랴에서 
나에게로

너도 로마를 보아야 하리라.” 
아멘!”

가이사랴에서 
지중해의 낙조를 바라보며

해질 무렵 어느 날 



만남보다 
빨리 오는 이별 앞에 
삶은 가끔 눈물겨워도 
아름다웠다고 고백하는 
해질 무렵 어느 날 
애틋하게 물드는 
내 가슴의 노을 빛 빈 집 

베드로의… 
고넬료의… 
사도 바울의…
그리고… 
나의 가이사랴.

가이사랴에서 해질녘에

므깃도에서


내가 므깃도평원을 방문하던 날은 바람 한 점없이 고요하다는 것이 이상했다. 전쟁의 피비린내가 가득해야 할 그 땅에 평화로웠다. 드보라 군대의 함성도,솔로몬의 역군들의 고함소리도, 요시아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주님이 오실 마지막 때, 
무서운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세론자들의 주장도 부질없어 보였다. 아마겟돈이 이곳이라니? 오히려 내 안에서, 그 깊은 골짜기에서, 갈등과 아픔과 상처들이 고함을 지르며 뛰쳐 나오는 듯 했다. 

그렇다. 전쟁은 내 안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이곳에서 살륙의 피 비린내가 아니라, 예수의 피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평안이 밀려왔다. 
마사다보다 더 견고한 성채가 되시는 주님 품 안에서...

예루살렘, 그 거룩한 성 


나 어젯밤에 잘 때 
한 꿈을 꾸었네 
그 옛날 예루살렘 성에 
곁에 섰더니 
허다한 아이들이 
그 묘한 소리로 
주 찬미하는 소리 참 청아하도다.
천군과 천사들이 화답함과 같이 

예루살렘 예루살렘 
그 거룩한 성아 
호산나 노래하자.
호산나 부르자.
호산나 노래하자.
호산나 호산나!!! 

***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

 시편 122:6~7a 

주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오며 
나라가 임하게 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 

표준새번역 마태복음 6:9~13

다윗성에서



내가 역사의 한 복판에 서 있다.
태양이 비쳤었고 
별들이 빛났던 곳 
그 안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식물들이 자랐었고 
바로 그 안에서 
인간이 생명을 갖고 살고 있던 곳 
바로 그런 곳이다.

나는 영혼을 바라본다.
이제는 세상과 단절된 공간 
화려한 폐허 
그곳에 서서 홀연히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여전히 태양이 비치고 
별들이 빛나고 
식물이 자라고 
영혼이 살아있는 
역사의 한 복판에 서서 
하나님과 세상과 나를 생각한다.

무너진 삶의 한쪽 모퉁이에서 


스스로 해야 할 일 
알지도 못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삶에 대한 자기의 신념을 
세워보지도 못한 채 
처참히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한 쪽 모퉁이 

무너진 인생의 한 쪽 모퉁이에서 
갈기갈기 찢겨진 삶의 조각 붙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하다가 
통곡하며 달려와 
안겨버린 당신의 품 

통곡의 벽에서

또 다시 당신 앞에 


아! 
내가 이곳에 섰다.
비아 돌로로사.
아직까지 
마음의 얼음도 풀리지 않는 
내가 
바닥마다 
주님의 핏방울이 얼룩지고 
여인들의 눈물이 
강물 되어 흐르던 이곳에 서 있다. 

“주님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어느 새 낡은 구두의 뒤축처럼 닳고 닳아 
되풀이할 염치도 없지만 
아직도 
이 말이 없이는 
당신께 
나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며 
그 눈물에 떠가는 조각배처럼 
이 길을 흘러간다. 

용서하옵소서.
이 죄인 
또 다시 당신 앞에 섰나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지신 
‘비아돌로로사’에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 함으로써 용서 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 입니다 


프랜시스의 “평화를 위한 기도”
6일 전쟁의 총탄자국이 가득한 
‘시온의 문’에서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6: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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