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역사기행
•홈  >  사역  >  청소년역사기행

 "

목록보기

  제  목 : 중국역사기행문 조회수 : 2027
  작성자 : 김기석 작성일 : 2003-08-18
  첨부파일:   중국역사기행문-김기석.hwp(21K)
★Day 1

7:30 A.M 나는 알람소리를 듣고 불현듯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이 바로 대륙 중국, 오랜 역사를 간직한 중국이라는 나라로 역사기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여행 전부터 안 좋은 일이 많았던 터라 행동을 조신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리무진버스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비로소 중국으로 역사기행을 간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 우리 식구 중 처음이라며 가서 열심히 배우고 큰사람이 되어서 오라고 하셨다. 이번 여행은 사연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나 또한 비장한 각오를 세웠다. 이번 여행으로 인해서 중국이라는 스케일이 다른 큰 나라를 보면서 나의 포부와 꿈과 희망을 크게 갖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치기로 말이다.

세관을 끝마치고 기다리던 북경 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를 자주 타본 터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항상 설레 이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그 쏠리는 느낌은 흡사 우주선을 타는 것과도 같았다. 비행기안에서 그렇게 1시간 40분쯤 흐르자 북경에 착륙한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처음 밟는 북경 땅. 우리 나라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동양인이라 이국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가이드 누나를 만나고 처음으로 중국 지폐인 100위엔을 사용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목사님께서 목이 마르시다고 하신 것이었다. 나 또한 목이 말랐기에 음료수를 사려고 상점에 갔다. 3위엔, 8위엔이 각각 그 가격이었다. 거스름돈을 거슬러 받자 돈의 종류가 많아져서 기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100위엔짜리를 깼다는 사실에 슬프기도 했다. 중국사람들은 정말 시끄러웠다. 언어자체가 매우 시끄럽고 목소리가 매우 큰 것이 중국사람들의 특징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이었다. 서로 싸운 다운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다.

가이드 누나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2일 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연변 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또다시 출국심사가 시작되었는데 웃을 일이 생겼다. 내가 가방에 넣어 두었던 사과주스를 술인 줄 알았나보다 꺼내어서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목사님께서는 나의 생김새 때문이라며 우숫갯소리를 하셨다. 공항의 상점을 돌아다니던 중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다. 분명 세관을 통과할 때는 건전지, 칼 등을 압수하고 있었지만 상점에서는 버젓이 그것들을 팔고 있는 것이었다.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중국에서는 영어가 통용된다고 들었지만 실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연변까지는 2시간정도가 소요되었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인 팝을 라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노래만 나와서 참 즐거웠다.

그렇게 2시간이 흐르고 밤이 되어서야 연변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나라의 고속버스공항터미널과 같은 칙칙한 냄새와 오래된 듯한 공항 건물이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짐을 찾으러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 세계 어느 공항에서도 보지 못했던 한글이 표기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나의 입가에는 환희의 미소가 번졌다. 평소 여러 국가로 여행을 다니면서 한이 맺혔던 것이 그것이었다. 우리보다도 못한 아랍국가들의 언어는 표기 되어있었지만 한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연변공항의 한글 표기는 나의 그런 한들을 눈 녹듯이 녹여 주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전부 한글이었다.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였다.

그렇게 가이드 누나를 만나고 허름한 연변 공항을 나와 버스에 탑승하여 식당으로 향했는데 연변의 거리는 의외였다. 도로는 잘 닦여져 있었고 드문드문 현란한 네온싸인도 있었다. 우리가 식사를 한곳은 마치 박물관과도 같은 건물이었다. 간판에는 "연변국제전시장"이라고 써있었다. 처음 먹는 중국에서의 식사 그런대로 맛있었다. 중식과 한식이 같이 나와서 밥맛이 아주 좋았다. 한마디로 "꿀맛"이었다.

식사 후에 연변의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간간이 들려오는 조선족의 말 그 중에서도 특히 T.V에서나 보았던 "고조"가 들려오자 나는 튀어나오는 웃음을 찾을 수 없었다. 옥수수를 구워먹고 칠팔십년대의 게임을 하고 거리에서 춤을 추는 모습들이 우리 나라 시골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순박함과 순수함이 묻어 나왔고 우리 나라의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지쳐있는 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좀더 있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체.. 나는 목사님과 같은 방을 썼는데 내가 가본 어느 특급 호텔보다 뒤지지 않는 분위기가 시설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께 전화 드리고 싶은 마

 "

  이전글 : └─Ð릡흘:꼭 읽으;
  다음글 : RE)) 리플놀이 하는거냐- _-ⓥ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