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제 목 : 여주 역사기행문 |
조회수 : 2555 |
작성자 : 이윤지 |
작성일 : 2005-08-26 |
아침일찍부터 오후6시까지 여주로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먼저 가정용해시계가 있다는 김영구 할아버지 가옥을 갔다.그 가정용해시게는 경기도 민속자료 2호라고 한다.해시계는 세종대왕시대때 장영실이라는 과학자가 만들었다.장영실은 원래 부산 동래에서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세종대왕의 도움으로 노예의 신분을 벗고 종3품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오르게 된 분이다.장영실은 임금님이 타는 가마에 바퀴를 달았는데 바퀴가 고장나서 임금님이 목숨을 잃을 뻔한 일 때문에 파면을 당했다.그 다음에는 고달사지 석불좌를 보러 갔다.그 곳에는 보물8호로 지정된 고달사지 석불좌가 있었다.석불좌는 부처가 앉는 의자라고 한다.석불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그 다음으로 본 것은 보물6호인 고달사지 원종대사 혜진탑비의 귀부와 이수다.혜진 탑은 목사님께서도 무슨뜻인지 모르겠만 원종대사가 고달사에 한 업적을 기리는 탑으로 추측하셨다.이수는 정말 아름다웠다.귀부도 이수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특히 귀부에 새겨져 있는 거북은 정말 생동감있었다.하지만 혜진탑비가 없어서 아쉬웠다.그 다음으로 본것은 국보 4호라는 고달사지 부도 탑이다.부도 탑은 스님이 죽으면 몸에서 나오는 사리라는 것을 보관에 두는 곳인데 그곳역시 아름다운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었다.그리고 용4마리가 여의주를 두고 싸우고 있는 모습도 새겨져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그 옆에는 원종대사 혜진탑비가 있었다.보물7호라는 혜진탑비는 너무 멋있어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그 다음에는 신륵사로 향했다. 먼저 조사당이라는 곳에 들렀다.조사당은 훌륭한 분들을 모시는 곳인데 나옹화상과 무학대사, 지공스님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그림이 있었다.자세히 들여다 보니 조사당의 마루는 우물마루로 되어있었다.안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그 다음으로 본 것은 보물228호인 보제존자 사리탑이다.모양이 석종 같았다.나옹화상의 사리가 보관되어 있었는데 다른 사리탑과는 달리 석등이 있었다. 그 석등은 보물231호 였다. 석등도 보물이 될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나옹화상의 일생이 적혀있는 비석까지 모두 세가지의 보물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멋졌다.연꽃무늬와 용무늬가 새겨져있는 다층석탑도 보았다.윗부분이 훼손되어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그 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다른 탑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우리 조상들의 힘이 느껴졌다.그리고 600년 된 은행나무도 봤는데 두께가 엄청났다.인도에 많이 있다는 전탑도 보았다.신륵사에 그 전탑이 있어서 벽절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가운데가 툭 튀어나온 배흘림기둥, 아래쪽으로 갈수록 굵어진다는 민흘림기둥,처마나 지붕을 받친다는 활주등 여러종류의 기둥도 배웠다.신륵사를 다 둘러보고 여주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영월루에 갔다.경치가 정말 일품이었다.처음에는 영월루가 다른 장소에 있었는데 이 곳이 경치가 좋아서 옮겨왔다고 한다.강가에 있는 보트 대여소와 주차해놓은 여러 차들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거라는 아쉬움도 남았다.여주 시내도 보였다. 좀 더 오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다른 곳을 가야하기 때문에 서둘러 내려왔다.보물 제91호,92호라는 여주 창리 삼층석탑과 여주 하리 삼층석탑도 보았다.여주 창리 삼층석탑은 풍화작용 때문에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그 다음은 조선17대왕이고 인조의 아들인 효종대왕릉을 갔다.그 곳은 녕릉이라 부른다.인조 때 청나라와 전쟁을 했는데 져서 청나라를 아버지나라로 섬기고 소현세자가 볼모로 잡혀가게 되었다.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삼전도에서 3번 절하는 치욕까지 치루게 된다.화가난 봉림대군은 북벌정책을 꿈꾸었지만 일찍 죽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그것을 보고 목사님께서는 "온고지신"이라고 하셨다. "온고지신"은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라는 뜻이다.조선4대왕인 세종대왕릉도 갔다.세종대왕릉은 효종대왕릉과는 달리 영릉이라고 부른다.세종대왕은 여러 업적을 남겨서 지금까지도 존경받고 있는 분들중 한 분이다.세종대왕이 세운 업적으로는 한글창제,문학,과학,건축(남대문)등이다.
세종대왕때 만들어진 여러 발명품들과 박물관을 보았다.발명품에는 간의,앙부일구등이 있었고,박물관에는 용비어천가,1441년 세계최초로 장영실이 만든 측우기도 있었다.마지막으로 명성황후생가를 갔다.명성황후는 고종의 아내이고 영의정 민치록의 딸이다.명성황후는 1851년 태어나 7살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었는데 고종의 아내가되어 고종과 함께 훌륭한 정치를 펴다가 1895년 일본군에 의해 죽고 만다.일본이 너무 나빴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