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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여주 기행문 ^^ㅋ 조회수 : 2161
  작성자 : 이석현 작성일 : 2005-08-27
25일 나는 여주역사기행을 떠났다.
6명뿐이라서 놀라웠다.선생님,목사님 모두 합해서 8명^^ㅋ
목사님께서는 얼마 안 힘드셨을 것같았다.
우리는 맨 처음 김영구 할아버지댁에 있는 해시계를 보러 갔다.세종때 장영실이 만든것이다. 옛날 시간을 알아보는 기구였다. 이 해시계가 나오기전에는 시간을 알수가 없었다.. . 장영실은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어머니대신 노비가 되어 지내다가 세종대왕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가 활자 만드는 일을 햇더고 한다. 세종대왕이 장영실을 보고 믿음직스러워라고 종을 파직하고 종5품 벼슬에 올렸다. 그리하여 해시계를 만들고 세계최초의 비가 내린 양을 재는 측우기도 발명하였다.그러던 어느날 왕이 타던 가마의 바퀴를 단 가마를 만들었다 왕이 떨어져 벼슬을 빼았고고 다시 조정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고달사 터에 갔다.지금은 아직 발굴중인 곳이고 고달사는 규모가 어마어마 했지만 고달이란 사람이 이 큰절을 혼자 만들었다고한다. 옛날에는 달과 별의 영향으로 날씨,기후들을 알아냈다.그리고 김득신이란 사람이 있는데 머리가 엄청 나빴지만 문장하나를 외우기 위해 책을 수억번씩 읽어 독서광 김득신이라 불렸다. 고달사는 부처를 앉히는 곳이라고 한다. 지금 돌부처는 없지만 돌부처가 앉던 의자는 남아있고 무늬가 있는데 이무늬는 연꽃모양이라고 한다.해진비원종대사 혜진비가 본이름이고 이 비는 원종대사의 비라는 내용이 적혀있고 밑에는 귀부 위에는 이수가 있고 귀부는 거북이 모양이 너무 생생하게 만들어져 보물6호로 지정됬다.그리고 이수에는 용이 있는데 귀부의 거북이처럼 생생하게 만들어졌다. 이 원종대사 혜진비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달사지부도라는 이 부도는 국보4호로 지정되었고 부도는 스님들의사리를 담는것이다. 보통 사리탑의 밑모양은 사각형인데 이 부도는 팔각형으로 되있고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고 연꽃무늬가 2겹이고 이런것을 복연이라고 한다. 그리고 용이 4마리가 그려져있고 4대왕을 새기고 자물쇠도있다. 이 조사당은 보물 제180호고 절에는 당마다 특별한 역할이 달랐고 배웅전은 부처를 모시는곳이고 조사당은 이 절에 훌륭한 스님들을 모시는 곳이고 이 절에는 무학이라는 스님이 이성계를 잘알고 있던 사이로 조선을 세울때 만히이 도와줬다.이조사당은 무학뿐만이 아니라 나옹,지공스님도 모신다.그리고 이 조사당의마루는 우물마루라는 마루의 형태이고 기둥위에는 공포라는것이있는데 기둥위에 있는 공포는 주심포라 하고 기둥과 기둥사이에 있는 공포를 다포짐이라 하고 날개처럼나온 공포를 익동이라 한다.보제존자 석종
이건 나옹스님의 사리를 담은 사리탑이다.보물 제228호다.신륵사 다층석탑이탑에도 용무늬가 있었고 우리조상들은 돌을 잘다루어서 돌로만든 문화재가 많다.이 탑은 보물 제 225호로 지정되었다.신륵사 전탑이 탑은 보물로 지정되었고 벽돌로 쌓은 탑이다.그리고 이 탑때문에 신륵사를 벽절이라고도 한다.그리고 기둥의 종류가 있는데 배흘림기둥,민흘림기둥,사모기둥,활주,도량주가있다
영원루 앞에는 남한강이 보인다. 그리고 영원루는 원래 여기가아닌 경기도 구리시에 있다가 이곳 여주군으로 옮겨오면서 복원하고 여주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이곳으로 옮겨왔던것이다.여주하리 삼층석탑이탑은 보물92호고 이탑은 우주라는 기초돌 위에 쌓았다.그리고 이옆에 여주하리 삼층석탑이 또있었고 이 탑은 보물 이다. 이밭들은 화강암중 일부로 무른것으로 쌓아 풍화 작용으로 파손이 심하다.
효종대왕릉이 릉은 녕을에 속하고 인조 때 청나라와의 전투에서 져서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나라 왕에게 절을 한게분해 북벌정책을 세우다 41세의 젊은나이로 가서 수포로 돌아갔다.
이 릉은 효종대왕릉 옆에 있다. 3대왕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 났음에도 불구하고 왕이되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개성적이고 과학적인 말이다.그리고 문학으로는 용비어천가등 많은 책을써고 과학적으로고 해시께,측우기를 만들었다..그리고 남대문을 세종께서 만드셨다.
명성황후의 아버지는 영의정였는데 7살에 고아가 되었다. 대원군 부인이 왕비로 만들다. 임오군란때 대원군이 명성황후를 죽인다고 하자 여기저기 도망다녔다. 사람들은 명성황후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장례식을 치루려 하자 명성황후가 나타나서 죽지않았다는걸 보여줬다.그러나 일본 건달들에게맞고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끝까지 국모라고 외쳤다고 한다..이것으로 역사기행이 끝났다.6명이 가서 편했지만 즐거웠기도 하고^^ㅋ 매우 조용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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