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제 목 : 여주 역사기행. |
조회수 : 2370 |
작성자 : 원예진 |
작성일 : 2005-08-28 |
나는 오늘 7:50분 정도에 일어나서 경선이와 함께 교회로 갔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 말씀을 듣고 출발 했다.
첫번째 코스는 김영구 가옥이었다. 해시계는 시간을 알아보는 것이다. 옛날에는 시계가 없었다. 그때는 배꼽시계<"꼬르륵"하면 밥먹을시간>또 해의 위치를 이용해서 시간을 알았다. 원시시대 때에는 밤돠 낮밖에 없었다. 밤과 낮밖에 없을때 사람들은 밤에는 자고, 낮에는 사냥을 했다. 그러면서 농사가 시작되었다. 또 농사가 시작되면서 아침, 점심, 저녁이 생겼고, 사회가 복잡해 지면서 24시간으로 나눠졌다. 장영실의 엄마는 노비생활을 하는데 갑자기 장영실의 엄마가 아팠다. 그래서 장영실이 엄마대신 노비생활을 했따. 장영실이 세종대왕님께 갔는데 활자를 만들었다. 그런대 너무 잘 만들어서 노비생활에서 풀려났고, 점점 계급이 올라서 높은 계급까지 올라갔다. 옛날에는 임금님이 가마를 타고 다녔는데 장영실은바퀴를 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바퀴를 달았는데 임금님이 떨어져서 죽을 뻔 하다가 살았다. 그래서 장영실을 매를 맞고 쫓겨났다.
두번째 코스는 고달사시 석불좌이다.
고달사는 고달이란 사람이 혼자 지었다. 목사님이 미쳤다고 하셨는데 미쳐도 좋은결과를 얻었다고 하셨다. 우리나라에는 역사에서 미친사람이 많다. 장영실은 과학에 미쳤다. 옛날 사람들은 별과 달을 연구했다. 왜냐하면 농사하기 위해서 이다. 달과 별에 의해서 날씨가 바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책 한권을 문장 1억번을 읽었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부처가 앉는 의자이다. 부처는 사라졌고 보물 8호로 지정되어있다. 의자 밑에 돌이 있는데 돌에 새겨진 무늬는 연꽃무늬이다.
세번째 코스는 원종대사 해진탑비이다.
해진탑=해진스님(?)
원종대사가 고달사하고 관계가 깊고, 원종대사가 한 것이 기록으로 새겨져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밑에서도 탑을 받히고, 위에서도 탑을 받힌다. 위쪽에는 무늬가 있다. 이 무늬는 거북이가 아주 생동감 있게 크게 있다.
네번째 코스는 고달사 부도탑이다.
국보 4호로 지정되 있고, 부도는 스님들이 돌아가시면 몸을 태운다. 거기서 사리가 나온다. 그 사리를 저 탑 안에다가 사리를 넣는다. 저 사리탑은 잘 볼수 없는 8각형 탑이다.
다섯번째 코스는 원종대사 부도탑이다.
원종대사 해진탑은 부도탑이다.
복련형태. 사각형. 비율이 중요하다. 밑에있는 기초, 몸퉁, 부도, 지붕의 비율이 이상으로 아름답다.
노는시간, 공부시간, 자는시간의 비율을 잘 잡아야 한다.
여섯번째 코스로 간 곳은 신늑사 조사당이다.
집들마다 역할이 다르다. 무학대사는 이성개랑 친구이다.
이성개=조선시대의 첫번째 왕.
길고 짧은 나무가 있는 것이 우물 마루이다. 기둥위에 공포가 있다. 기둥위에 공포가 있다. 기둥과 기둥사이에 공포가 여러개 있는 것이 답포집.
공포=지분에 무언가 받히기 위해서.
힘든사람을 받이는 것이 공포이다.
우리도 힘든사람을 받히는 공포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곱번째 코스는 사리탑이다.
우리가 아까봤던 사리탑<고달사지 부도>는 신라시대 사리탑을 따라한 것이다. 저 위에 뚜껑을 열면 사리가 있다. 아름다운 것이 있는데 아람다운 것이 쭉 있느면 아름다운 것을 느끼지 못 한다.
여덟번째 코스는 보제종자 나옹의 사리탑이다.
시간은 바뀌지 읺아서 시간을 붙잡아야 한다. 열심히 해야시 시간을 붙잡아야 한다. 보물로 지정되 있다.
아홉번째 코스는 영월유이다.
여기서 내려다 보면 여주 읍내가 다 보인다.
우리가 꿈을 이루면 높은 곳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하던지 높은 곳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열번째 코스는 효종대왕릉이다.
인조때 청나라와 전쟁이 일어났는데 인조가 졌다.
우리가 청나라의 아들이 됬다.
왜 졌냐하면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힘은 세가지가 있다.
육체적인 힘.
영적인 힘.
지식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여주 역사기행은 정말 좋았다. 왜냐하면 많은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