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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내고장역사기행, 이천, |
조회수 : 2154 |
작성자 : 이지혜 |
작성일 : 2004-08-24 |
나는 방학숙제를 하고, 역사기행도 하고싶어서 현대교회에서 보내주는 역사기행을 갔다.
거기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목사님과 17명과의 역사기행을 갔다.
첫번째로는 고인돌로 향해 출발했다.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 있었는데,
북방식 고인돌은 밑에 작은돌 두개가 있고 위에 덮게돌이 있었다.
남방식 고인돌은 땅을파서 넓은 돌을 놓고 밑에 관을
놓고 위에 큰돌로 덮는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나는 고인돌에 대해 더 알고싶어서 집에오자마자 고인돌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언니한테 좀 더 물어봤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을 사용하였는데 그 시대때 무기가 많이 만들어 졌다.
그래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 졌다고 한다.
그다음, 백송나무를 보러 갔다.
백송나무는 253천연기념물 이라고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나는 백송나무에 대해서 자세히 잘 못들어서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 보았다.
현재 남아있는 백송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나무는
서울의 헌법재판소 경내에서 자라고 있는 재동 백송입니다.
그리고 나는 왜 다른 이름의 나무도 있는데 왜 백송나무일까가 궁금해졌다.
백송은 줄기의 껍질이 흰 소나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천향교는 중도교육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양정학교도 갔다.
양정중학교는 1907년에 세웠다.
공설운동장 주변에서 서희장군의 동상을 봤다.
매일 아빠차타고 시내에 가면 그냥 지나쳤지만,
오늘 의미있게 보았다.
나는 서희장군에 대해 언니한테 물어보았다.
서희장군은 고려시대때 거란의 1차침입을 막아냈었는데,
소손녕이 80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려로 쳐들어왔다.
하지만 서희장군은 소손녕을 설득해서 돌아가게 했고, 강동6주를 얻었다고 한다.
설봉산에서 많은것을 보고 느꼈다.
설봉산을 많이 가봤는데도 그냥 지나쳤지만, 이렇게 의미있게 보니까 좋았다.
그다음에 이천율면에 있는 어재연장군 생가에 갔다.
어재연장군께서 왜 유명한지 인터넷에서 조사해보았다.
어재연 장군께선 미국의 선박이름(제너렬셔먼호)의 침략을 막으시다가
전사하셨다. 어재연장군은 끝까지 나라를 지키시겠다는 애국심이 강해보이셨다.
이렇게 좁은 이천에서 많고 유명한것이 많다니...
평소에 스치고 지나간것을 자세히 오래오래 관찰해보니까 정말 의미있고,
뜻이 깊다. 나중에 나도 훌륭한사람이 되고 싶고, 옛 조상들처럼 자연속에 어울려서
자유롭게 지내고도 싶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역사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언니보고 나중에 스치고 지나가는것도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말하였다.
언니는 기꺼이 승낙했다.
좁고 좁은(땅) 이천이지만 넓고 넓기(유명)한 이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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