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교회에서 우리고장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기록하였다.
처음에는 고인돌에 갔다.사람들이
무리의 우두머리를 세우고 무리를 지어살기 시작한것은
청동기때부터니까 아마도 이천에는 청동기때부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듯 하다.한반도 전역에는 고인돌이 29,510기에 달한다고
하니 한반도에 있는 고인돌은 세계에 있는 모든 고인돌의 60%를 차지한다고 볼수있다.그 이유는 강력한 지배자의 출현과 영혼 숭배사상때문이라고 한다.나는 그곳에서 고인돌의 모양이
남방식과 북방식이 있다는것을 알았다.남방식고인돌은 굄돌을 2개 놓고 위에 덮개돌을 올리는 형식이고 북방식 고인돌은 굄돌없이
큰돌을 올린다고 한다.그다음에는 백송을 보러갔다.
백송은 천연기념물 253호로 지정되어있는데 우리나라에는
8그루가 있다.나무껍질이 분필가루를 발라논것처럼 하얀색을
띄었다.늘 변함없이 푸른 소나무에 순결을 나타내는 하얀색까지 어우러져 있으니 독특하고도 아름다웠다.그 다음은 향교를 보러
갔다.향교는 사립교육기관으로 즉 지금의 중,고등학교라고 한다.
향교는 총 열칸이었다.향교뒤쪽으로 가면 강학공간이 있다.
또 계단이 있고 그 계단위에는 태극기 문양이 그려진 문
3개가 붙어있다.그 문으로 들어가면 사당이 있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향교의
지붕은 마주보고 있어서 맞배지붕이라고 한다.그리고 더불어
서당의 대문은 가운데가 올라간 서술지붕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양정 중,고등학교를 갔다.1907년에 세워진
이천 최초의 학교인 양정학교는 선교사가 세웠다고 한다.
그때즘 세워진 학교가 특신학교이다.특신학교는 한번 문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고 한다.처음 서양학문을 가르친때가 1800년 이후인데
고종이 이름붙인 배제학교와 명성황후가 이름붙인 이화학교가 있다
는 것을 알았다.그 다음은 서희 동상을 보았다.서희에 대해서는
자세히 필기하지못했는데 18살때 과거에 장원급제했다고 한다.
또 거란족이 80만대군을 이끌고 오자 모두 싸우려하지 않았는데
서희만은 용기있게 싸울것을 주장해 결국 우리나라가 거란족을
이겼다고 한다.서희는 거란족의 장수 소손녕을 만나 이야기하고
같이 힘을 합쳐 여진을 이겨 여진족의 땅을 되찾았다고 한다.다음은
중리동 3층석탑을 보러갔다.언제 만들었는지는 알수없으나 석가탑과
비슷한 생김세를 가진것으로 보아 제법 오래된듯 하다.
목사님께서는 탑의 층을 세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밑에서 평평한 곳까지는 기초로 층으로 세지 않고
그다음부터 기와처럼 위가 올라간 부분만 센다고 한다.
그 다음 설봉산에 있는 마애불을 보았는데 불교는
아니었지만 몸집이 뚱뚱하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있는 부처님의
모습이 다정해보였다.지금은 많이 마모되었지만 별 도구도
없던 시대에 이렇게 큰 바위에 부처님을 새긴 사람들이
놀라웠다.많이 힘들었겠지만 이렇게 완성하기까지
불교를 믿는 사람들 나름대로의 믿음과 신앙이 있었을것이다.
그 다음 어재연장군 생가에 갔는데 아직도 사람이 살고있었다.
정면이 일곱칸,측면이 세칸이었고 옆에는 홍살문이라는 문이 있었다
나라에 충성을 다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내려주는 문이라고 한다.
어재연 장군이 무슨 일을 했냐하면 프랑스의 제너럴 셔먼호를 불사르자 그것을 계기로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키자
동생과 끝까지 열심히 싸워 프랑스 군대를 격파한 장군이라고 한다.
결국 그곳에서 전사하셨긴 하지만 그것은 영광스러운 죽음일것이다.
나는 이번 우리고장 역사기행을 통해 이천에 대해 더
잘 알게되었다.이천에는 서희,어재연등 훌륭한 인물들도 있었고
아름답거나 오랜 전통을 가진 곳들이 많은 듯 했다.
이천이 도자기.복숭아등의 여러가지 특산물을 배출해내는
어엿한 시가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과 많은 공간의 역사가
있었던것 같다.숙제도 하고 이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어린이들에게 귀한시간을 갖게 하기위해 애쓰신 목사님께
감사드려요
<※이름이 명하나라고 되어있는데 하연이에요.사정상 가입이 되지
않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