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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김규상 기행문 |
조회수 : 1764 |
작성자 : 김규상 |
작성일 : 2005-07-04 |
규상이 기행문 입니다
새벽2시 30분 교회에서 출발해서 익산휴게소에서 한번 쉰다음 정읍으로 나갔다.
우리를 제일 먼저 만난 곳은 영상강 하구둑이다.그 쪽 지방은 물이
많아서 농사짓기가 편하다.하지만 물을 관리하는 시설이 부족해서
힘이들었다.그래서 하구둑을 지어서 물을 관리하였다.
남도산성에 갔다. 이 곳은 대중손장군과 삼별초군(좌,우,신의군으로 나뉜다.)은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온이라는 사람을 왕으로 모셨다.결국 이곳은 고려와 원나라의 협공을 받고 무너지며 왕 온
은 죽고 삼별초 군은 김통정장군을 따라 제주도로 갔다가 점멸이 된다 그 앞의 남도 산성앞의 해자는 두가지 다리가 있는데 하나는 단통교 하나는 쌍통교이다. 그 다음에는 조선시대 명화가 허유 선생이 말년을 보내던 운림산당에 갔다. 허유선생은 어릴때부터 특별히 그림을 잘 그리셨다. 조선 헌종때는 여러번 임금님 앞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 다음 한세기에 비극적인 생활을 한 온의 묘로 갔다. 온의 묘는 다른 왕의 묘처럼 풀도 깎이지 않고 손질도 않 된 묘였다. 나는 온처럼 살 바엔 비천한 천민으로 산다는게 훨씬 났다고 생각했다. 슬픈 온의 묘를 방문하고 진도의 명견 진돗개를 보러 진돗개 연구소를 찾아갔다. 진돗개는 우리나라 천연 기념물 제 53호고 똑똑하고 주인을 질 따른다. 백구라는 개는 대적에서 진도까지 주인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이곳에서 재미있는 개 쇼(?)도 보았다.
진돗개는 명견 클럽에 가입을 했다고 한다.
또 온과 삼별초에 대한 유적지를 찾아갔다.이 곳의 이름은 용장산성이다 계단 형식으로 되어있다.삼별초와 대중손은 이 곳에 궁을 세었다.그들이 왜 진도에 궁을 세웠냐면 땅이 비옥해서 1년 농사를 지으면 3년동안 먹고 살 만큼 땅이 비옥하고 적이 물건을 실고 섬에 오면 쉽게 약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벽화 항구에 갔다.
이튿날 제일먼저 다산초당에 갔다. 다산 초당은 정약용선생님이 지으신 곳이다. 그곳에서 정약용 선생은 18년간 귀향살이를 했다.
그 다음엔 김영랑 생가를 갔다. 김영랑 시인은 현대시를 개척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김영랑 시인은 일제시대부터 6.25때 파편을 맞고 숨지기 까지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등 많은 시를 남겼다.
그 다음엔 5.18국립묘지엘 갔다. 여기엔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벌였던 사람들이 묻힌곳이다. 그 다음엔 송강정에 갔다. 송강정의 옛이름은 준롭정이라고 한다. 송강정은 정철의 정자이다. 정철은 선조때 탄핵을 받고 송강정에 4년간 머물렀다. 그 다음엔 소쇄원에 갔다. 소쇄원은 담양에서 제일로 멋진 정원이다. 그리고 식영정에 갔다. 이곳도 역시 정철에 관한 유적지이다.
정철에 관한 유적지는 환벽당, 송강정,식영정이 있다.
세쨋날은 죽녹원에 갔다. 죽녹원은 대나무 생태공원이다. 아래는 대나무이고 위는 죽순인 아름다운 대나무도 참 많이 있다. 그리고 고창 고인돌에 갔다. 이곳은 유네스코로 지정된 고인돌 공동묘지이다. 이곳에 세계 60%의 고인돌이 있다.
3일 동안 참 많은 유적을 보았다. 가장 감명 깊었던 곳은 적지는 않았지만 대나무 박물관이다 그 곳에는 대나무로 만든 것이 참 많다
시간이 있으면 지금까지 간 곳에 다시 가 보고 이순신 세트장에도 가보고 해신 세트장에도 가 보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