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홈  >  사역  >  어린이역사기행

 "

목록보기

  제  목 : 한국근대사 역사기행 기행문을 올립니다. 조회수 : 1987
  작성자 : 장영우 작성일 : 2006-02-11

목사님 안녕하세요.
장영우입니다. 한국근대사 역사기행을 다녀온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기행문을 올립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다음 역사기행때는 제일 먼저 기행문을 작성하여 빨리 올리
겠습니다.
다음 역사기행때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안녕히 계세요.

10월 10일 월요일 첫째날

오늘은 역사기행 첫째날이다.
내가 사는 곳은 평택이기 때문에 역사기행을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친구 준희와
하룻밤 같이 지내게 되었다.
친구 준희랑 같이 밤에 많이 놀아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7시였다. 밥을 먹는데 주형이가 왔다. 석현이와 방이역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 서둘러
준비를 하고 방이역으로 갔다.
종로3가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목사님과 만나기로 한 탑골공원으로 갔다.

탑골공원은 파고다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고다라고 부르는 이유는 인도에서 탑을
파고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탑골공원은 원각사 절터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시립공원이며, 국보2호인 원가사13층
석탑이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는 3.1운동이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YMCA 건물로 갔다. YMCA 건물은 존워너 메이커가 지은 곳으로
기독교 정신을 갖고 있는 청년들이 사회생활은 하는 곳으로 종로에 새워진 최초의 빌딩
이다. 존워너 메이커는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를 많이 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한번은
교회 앞마당이 진흙탕인 것을 보고 한달도 빠지지 않고 매달 벽돌을 놓아서 벽돌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도 존워너 메이커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가 그 다음으로 간 곳은 태화관이다. 이곳은 명월관이라는 음식점이 있던 곳이다.
태화관은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하나 있다. 이곳 태화관이 매국노 이완용이 살던 집이 였다고 한다.
내가 민족대표 33인중 한명이었다면 매국노 이완용의 집이였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그러나 고종은 실제로는
그리 훌륭한 왕은 아니었다. 11살에 황제로 등극하였으나 우리나라가 개화기에 접어들어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가 혼란하였다. 그리고 옆에 어떤 돌이 있는데 그것은 서울에서
어느 도시까지의 거리를 잴때 기준이 되는 것으로 도로원표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광혜원이라는 곳이다. 광혜원은 알렌이라는 사람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다. 갑신정변때 명성황후의 동생이 칼에 맞게 되었는데 알랜이 서양
의술로 고쳐주엇으며 이를 계기로 고종의 신임을 얻어 세운 곳이다. 이 광혜원은 세운지
12일 만에 제중원으로 바꾸고 의사를 더 모았다. 지금은 외한은행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 다음에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갔다. 이곳 외국인 묘지에는 순교자님들이 묻힌 곳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의료 선교사인 존 헤론 선교사님도 여기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히셨다. 헤론선교사님은 이질에 걸려 돌아가셨는데 묻을 곳이 없어 휴양지였던
이곳에 다른 선교사님들이 묻고 싶어했는데 처음에는 허락을 하지 않다가 나중에 허락되어
양화진에 묻히셨다고 한다. 이곳 양화진에는 헤론 선교사님 말고도 우리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신 선교사님들이 많이 묻혀 계신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을 죽인 절두산에 갔다. 카톨릭 신자들이 죽은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이러한 행동은 조상을 위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들을 다 죽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때 대비가 섭정정치를 했는데 이때 대비가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천주교를 믿는다고 핑계를 대고 다 죽였다.

그리고는 점심을 먹었다. 많이 돌아다녀서 배가 무지 고팠는데 좀 먹으니 살것 같았다.
나는 만두국을 먹었는데 배가 고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맛이있었다.

다음에는 경복궁에 갔는데 정말 크고 아름다웠다. 경복궁 안에 있는 수정전은 세종대왕때
한글을 만든 곳이다. 그리고 사정전에 갔는데 이곳은 임금님이 신화들과 회의를 하던
곳이다. 또 내정전에 갔는데 이곳은 왕비가 쉬던 곳이다.
그리고 아니산의 굴뚝은 경복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같다. 아니산은 경회루를 지울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작은 산이다.
그리고 경복궁의 꽃담도 굴뚝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또 진청궁에도 가 보았는데 이곳은 일본 공사 미우라가 깡패들을 시켜 명성황후를
시해한 곳이다 . 지금은 공사를 하고 있어서 보지는 못했다.
일본 사람들은 정말 나쁜것 같다.

그 다음에는 방송통신대학교라는 곳에 갔는데 이곳은 조선말에 공업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서울학교 의과대학에 갔다.이곳은 일제시대때 대한병원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청계천에 갔는데 물이 정말 맑았다.
오늘이 첫번째 날인데 비록 힘은 들었어도 정말 보람있는 하루였던 것 같다.
내일이 정말 기대된다.

10월 10일 화요일 둘째날

오늘은 역사기행 둘째날이다. 아침에 청소를 하고 나와서 첫번째 목적지에 갔다.
첫번째로 간 곳은 운현궁에 갔는데 이곳은 고종황제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살던 곳이다.
흥선대원군은 황제만큼 권력이 강해서 대궐같이 집이 컸다.
옛날에는 안채와 사랑채로 나누어 져 있어 남자와 여자가 심하게 차별됐다고 한다.
운현궁에는 사랑채인 노완당 그리고 대원군이 사생활을 하던 노락당 . 그 다음에는 안채인
이로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간곳은 교동초등학교에 갔었다. 교동초등학교는 옛날에는 한성사범
학교로 갑오개혁때 선생님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학교도 작고 사람들도 별로 없었지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학교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경인미술관에 갔는데 이곳은 조선말기에 개화파의 한 사람인 박영효의
집이었다. 박영효는 철종의 딸과 결혼해 부마가 되었다. 그리고 박영호는 일본에 제3차
수신사로 갔을때 우리나라 국기가 없자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태극기를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 다음으로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에 갔다. 천도교는 다른말로 동학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최재우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꼭 교회 같았다. 많은 종교들이 기독교를 본 받고
있다. 나도 교회를 다니는데 많은 종교들이 기독교를 본받고 있다니까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리고는 박규수의 집터에 갔다. 박규수는 박영효와 같이 개화파의 한 사람이다. 외국의
문물을 받아 들이기 위해 항구를 열었는데 오히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내가 옛날에 태어난다면 개화파의 한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나라가 빨리 발전하지 못한
것은 갑신정변이 실패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펴서 일본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다음에는 헌법재판소에 갔었는데 이곳은 홍영식의 집이 였으며 광혜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간 곳은 김옥균의 집터인데 지금은 도서관이 있다. 김옥윤은 일본에
건너가 발달한 일본문화를 배워와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려고 했던 사람이다.
김옥균도 개화파로서 갑신정변이 3일만에 실패해서 외국으로 망명을 하였다.

그 다음에는 독립공원에 갔는데 그곳에는 독립문도 있었고 서재필 박사의 동상도 있었다.
서재필 박사는 15살때 병조판서를 지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갑신정변
때문에 미국 워싱턴으로 망명을 갔으며, 다시 돌아와서 독립협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갈등을 하다가 미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독립문은 영은문이 있었던 곳인데 독립문은 파리의 개선문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독립관도 있었는데 독립관은 원래 도화관이 있었던 곳이었다.
도화관은 중국에서 사신이 왔을 때 잔치를 하던 곳이다.

그 다음에는 서대문 형무소에 같다. 이곳 서대문형무소는 독립운동가를 갇아 두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여러가지 고문기계등 그곳에 있는 감옥을 보았다. 그리고 지하고문실은 ……….
정말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이 자랑스럽다.

다음엔 우정총국에 갔다. 우정총국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우체국이다. 이곳을 처음 열었을
때 갑신정변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다시 열기까지 10년이나 걸렸다.
갑신정변은 갑신년에 개혁파가 일으킨 정변이다. 하지만 이 정변은 3일 만에 실패하였다.

그 다음에는 화페 박물관에 갔다. 이곳에서 다른나라의 화폐와 우리나라 화폐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차를 타고 가다가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우리나라의 토지를 빼앗기
위해 세운 회사이다. 농민들에게 가지고 있는 땅을 신고하라고 하고 신고를 하지 않은
농민의 땅은 빼앗아 갔다. 그러나 농민들은 복잡한 신고절차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하고
앉아서 자신들의 땅을 빼앗겼다.
그리고 조선식산은행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도와 우리나라의 경제을 빼앗기 위한 회사이다.

마지막으로 코엑스 매가박스에서 "찰리와 초콜릿공장" 이라는 영화를 봤다.
오늘은 두번째날이어서 잘하고 싶었는데

 "

전체댓글 0

댓글 쓰기0/200
입력
  이전글 : 제주도 역사기행 일정과 참가신청에 대하여
  다음글 : 근대사 역사기행 동영상이 자료실에 ~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