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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RE] 이렇게 쓰세요 |
조회수 : 1683 |
작성자 : 박행신 |
작성일 : 2003-08-03 |
이번 역사기행은 부산쪽으로 가는 먼 기행이기 때문에, 새벽 2시에 교회에서 출발을 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차 안은 조용했지만, 승아와 초아,다은이랑 나때문에 시끄러워서 지적을 받았다. 어느새 그 일을 다 잊고, 우리는 아침식사를 휴게소에서 먹은 후 목적지로 출발했다.
우리가 맨 처음 도착한 곳은 조계산이었다. 조계산은 좌익과 우익이 충돌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여순 반란사건의 배경이 되는 산이었다. 이 사건은 1주일만에 진압되었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순천에는 온전한 집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조계산은 가슴아픈 사건의 배경이 된 산이었다. 나는 이런 나쁜 배경이 되지말고, 좋은 배경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목사님을 따라서 발걸음을 재촉 하였다.
조계산을 따라가다 보면 비석들이 많이 있는 곳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 비석의 이름은 부도라고 하였다. 부도가 많다고 하여 그 곳은 부도 밭이라고 불렀다. 참 재미 있는 이름같다. 그럼 책이 많은 곳은 책밭인가; 하하 이런 엉뚱한 발상은 버리고 다시 목사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 부도 안에는 스님들의 사리가 들어 있는데, 사리는 수행을 열심히 한 스님들의 시신을 태울 때 나오는 일종의 보석같은 것 이라고 한다. 그 사리들을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볼수가 없었다. 보고싶었는데.. 목사님은 우리도 한 평생을 산 후에 뒤를 돌아보면 보석과 같이 빛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살려면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하셨다. 정말 보석처럼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
또 거기서는 절의 3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첫째.석가모니의 사리 둘째.해인사의 팔만대장경(불경) 그리고 셋째.송광사 고승이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된 나는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알려고 대웅전 쪽 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웅전은 송광사에서 제일 큰 건물이다. 웅장한 대웅전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마치 대웅전의 쫄병같았다. 대웅전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약 700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이같이 오래남아있는 건물들 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곳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는 다음 목적지인 고인돌 공원으로 향했다. 고인돌 공원이라 그런지 입구도 가짜 고인돌로 되어 있어, 고인돌 공원이라는 것을 실감케 해 주었다. 고인돌 공원에 들어가보니, 여러가지 고인 돌이 많이 널려(?)있었다. 이런 고인돌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남방식,하나는 북방식 그리고 개석식 고인돌이다. 남방식은 시체를 땅에 묻고 그 위에 작은 돌을 받친 후 큰 돌을 올리는 형식이었고, 북방식은 밑에 돌이 받치고 있고 그위에 또 큰 돌을 올리는 형식이었다. 개석식은 무덤위에 그냥 큰 돌을 올리는 형식이라고 한다. 고인돌이 원시인들의 무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인돌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아니까 역사기행을 잘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힘들고 지치고 더웠지만,역시 새로운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역사 기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뿐 만이 아니라 고인돌 박물관에서 고인돌 만드는 방법도 보았다. 사람들의 힘이 여간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좀 까다로워 보였다.
다음목적지는 낙안 읍성이었다. 우리나라의 성 안에는 마을이 있는 성을 보기 힘든데, 낙안 읍성은 그 안에 마을이 있어서 사람들이 살기도 했다. 민박집도 있었고, 보통 집과 다름없이 우편물을 담아놓는 편지함도 있었다. 신기 했다. 저번에 해미읍성이나 다른 곳을 갔을 때는 다 성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는데.. 낙안 읍성 앞에는 적들을 막기 위한 해자도 있었다. 해자는 적들이 잘 들어오지 못하게 설치 해 놓은 일종의 방어를 위한 시설이다. 해자위로는 다리가 있었고, 전쟁이 날 경우에 그 다리를 뜯어내면 적들이 해자를 넘어와야 하니까 그 때 공격을 하여 방어와 공격을 같이 할수 있는 일석이조였다. 낙안 읍성에서는 전통문화도 체험해 보았다. 낙안 읍성을 둘러본 후 우리는 왜성으로 향하였다.
왜성은 일본 수군이 이순신의 수군에게 전투마다 패하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바다에서는 절대로 이순신의 군대와 싸우지 말라고 명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 가까운 육지에 성을 쌓고 우리 수군을 공격하였는데, 그것이 왜성이다. 우리나라 수군을 무서워 하여 그곳에 성을 짓고 우리나라 수군을 무찌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머리는 뛰어나서 그런 것 쯤이야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엔 관음포 이 충무공 전물유허에 갔다. 이 곳은 이순신장군께서노량바다에서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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