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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축복 속에 다녀온 남해안 역사기행 조회수 : 2071
  작성자 : 정재우 작성일 : 2003-08-09
-축복 속에 다녀온 남해안 역사기행-

신하 초등학교
5학년 1반 14번
정 재우

현대교회에서 방학때 마다 실시되고 있는 역사기행을 어머니에게
전해듣고 또 막상 참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기대도 되었다.
남해안이라 거리가 먼 줄은 생각했지만, 차를 타고 그렇게 많이
이동 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차 속에서 멀미와 싸움을
했어야 됐었다.
7월 28일 월요일 새벽 1시 20분에 일어났다. 눈이 저절로 감겼지만 졸림을 무릅쓰고 현대교회로 달려갔다. 인자해 보이시는 목사님은 새벽인데도 졸리시지도 않으신지 일일이 친구들 이름을 불러주시고 주의사항도 좋은 목소리로 말해주셨다.
새벽 2시에 드디어 출발을 했다. 차 안에서 여러번 멀미를 하다보니 잠도 오지 않았다.
6시경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송광사"였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에 하나로 16명의 국사들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아직도 목사님께서 설명하신 내용이 기억이 난다. 사천왕상이 있는 문에 있는 사리나무로 만든 쌀독은 그 크기가 엄청나서 입이 딱 벌어졌다.
그 쌀독에는 쌀 7가마를 담을 수 있다고 하셨다.
"고인돌 공원"에서 처음 알게 된 것은 고인돌도 종류별로 나뉘어 진다는 것이었다. 북방식 고인돌은 우리가 밥을 먹는 식탁처럼 생겨 탁자식 고인돌이라 하고, 남방식 고인돌은 그 생김새를 따라 바둑판식 고인돌이라 하고, 덮개돌만 있어 고인돌 같지 않은 개석식 고인돌도 있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고인돌을 보면서 여지껏 그걸 모르고 살아왔던 내가 참 한심스럽고 바보같이 느껴졌다.
"낙안읍성"에서 우리는 조선시대 사람이 되어 보았다. 다듬이질도 해보고 낟알을 훑어내는 농기구와 맷돌과 같은 농기구도 보았다.
또 재미있는 투호놀이를 했는데 한개라도 넣으면 목사님께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신다고 하셨는데, 3분 정도가 지나서 내가 처음으로 골인을 하였다. 그때는 너무 기뻤다. 낙안읍성 구경을 다 한 다음 식당에서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왜성"은 올라가기가 힘들었지만 그 위의 경치는 정말 좋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바다에서 싸우면 이순신 장군에게 자꾸 패하니
까 왜성을 지어서 육지에서 본부를 두어 대포로 공격을 해서 조선의
배들을 침몰시켰다고 한다.
내 생애 처음으로 가 본 "상족암"에서는 공룡 발자국도 만져보고,
사진도 찍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총을 맞으신 후 안치된 곳인 "충무사"를 지나서 "관음포"로 갔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때 쓰셨던 거북선의 내부까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창,칼을 들어 보고 갑옷도 입어보았다.
이렇게 해서 역사기행의 첫번째 날을 마쳤다.
두번째 날에는 어떤 재미가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새벽 5시 30분경에 일어났다. 양치질을 하고 진주성으로 출발했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진주성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논개와 일본 장군이 술마시고 논 후 같이 몸을 던졌던 의암이 기억에 남는다.
날씨가 좋지 않아 처음부터 조금 아쉬움이 남는 둘째날이었다.
파라다이스호를 타고 "한산섬"에 도착했다.
한산섬 조금 위로 올라가 수루에 올라 시조를 외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나니" 란 시조이다.
섬 전체가 충무공의 유적지인 한산섬의 답사를 마치고 다시 배를 타고 육지에 발을 디뎠다.
충무공의 사당인 "충렬사"에는 천연 기념물 74호인 동백나무가 많았다. "세병관" 왼쪽편에 돌로 만든 장승으로 마을의 재앙을 쫓는벅수가 있었고 세병관 안에 써져 있던 가로 2m의 큰 글씨가 기억에 남는다.
"제 5호 옥성"을 타고 "외도"에 도착했다. 올라가기가 힘들었지만 잠깐 잠깐 쉬면서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은 땀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았다.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었다.
외도에서 육지로 올때 배가 심하게 흔들려 육지에 도착하나까 막 토가 나오려고 하였다. 토를 하려고 하는데 목사남께서 또 차를 타시라고 하셔서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마지막 날은 날씨도 정말 좋고 컨디션도 좋았다.
낙동강 하류의 철새 도래지인 "을숙도"에서 하신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댐처럼 우리 몸에 나쁜 것은 문을 닫아 버리고, 좋은 것은 댐처럼 문을 열어라".
"서울 깍두기"란 식당에서 설렁탕을 먹고 "자갈치 시장"에 갔다.
시끌벅적한 시장 분위기와 우리 외할머니가 쓰시는 재미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그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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