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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남해 역사기행문 조회수 : 2197
  작성자 : 권수현 작성일 : 2003-08-09
첫째날, 새벽 2시부터 버스를 타고 "송광사"로 향했다. 모두들 아침부터 시작될 역사공부에 귀를 기우릴수 있도록 하기위해 오늘의 역사기행이 궁금하지만 곤히 잠을 청했다. 몇시간동안 차를 타고 드디어 "송광사"에 도착했다. 자고 일어나니 몸은 찌부등했지만 아침의 맑은 공기에는 이길수 없었는지 금방 찌부등함이 "싹"가셨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로서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꼽히는 대단한 절이다. 아침에 가서 그런지 절안의 느낌은 다른 때의 느낌보다 더 좋았다. 모든 스님들께서는 "무언"이라는 뜻을 머릿속에 담고 마당을 조용히 쓸고 계셨다. 절안을 돌아다니며 둘러보니 주지스님을 뵙게 되었다. 텔레비전으로 만 보았던 주지스님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스님께서 두손을 모으시고 우리에게 인사하시니 예의를 갖추어서 "나도 해봐야지."하는 마음에서 두손을 모으게되었다. "송광사"를 둘러보니 특이하게도 "송광사" 에는 다른절과 달리 대웅전 앞에 탑이 없다는것을 느꼈다.
"왜 그럴까?" 난 이 궁금증를 풀기위해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가서 스님께 여쭙고 싶다.

다음은 고인돌 공원으로 갔다. 우리나라에는 약 3만 여 기가 분포되어있다. 이 많은 고인돌 종류에는 "남방식","북방식","개석식", 3가지의 고인돌 종류가 있다. 한반도에 이렇게나 많은 고인돌이 발견되었다니... 난 옛날의 신서기 시대 사람들은 협동심이 강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석기인들의 협동심이 강한것은 옛날에는 인간의 힘이 워낙 약했고, 서로 도우며 살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워 생활속에서 부터 협동심이 강해진게 아닐까싶다. 그런데 21세기의 꿈나무들인 우리들의 협동심은 어디에 버려졌는지...

세번째로는 "낙안읍성"에 갔다. "낙안읍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아직도 읍성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초가집에서 아직까지도 살고있다는것이 전통을 보전하려는 노력의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에는 "왜성"으로 갔다. 이 곳은 말 그대로 왜적인 일본군이 쌓은 성이다. 이 성을 쌓게 된 이유는 바다에서 이순신장군과 싸우면 일본군이 자꾸 패하니 육지에서 대포를 쏘아 이순신장군의 군대를 함락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순신장군께선 자기의 유일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오직나라를 위해 왜군과 싸우셨다.는 것이 대단했다. 이순신장군의 충성심과 애국심이 자랑스럽다.

마지막으로 상족암으로 갔다. 이곳에서는 퇴적층과 공룡발자국을 볼 수 있었다. 공룡발자국의 길이는 약30cm 정도 되어보였다. 공룡발자국의 모양은 거의 동그라미 수준이었다. 내가 생각한 공룡발자국의 모양과는 달랐다. 세월이 지나서 그런가 보다. 그다음 퇴적층으로가서 한바퀴를 돌아 보았다. 퇴적층은 바다에 있던 광물질이 층층이 쌓인것이다. 여름에는 많이 쌓이고 가을,겨울에는 조금만 쌓여 층의 두께가 달랐다.목사님께서는 퇴적층을 보시고 "우리의 삶도 퇴적층처럼 쌓인다.그러니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야한다."고 하셨다. 목사님과 친구들과 함께 나는 마음속으로 "나의 삶이 좋은 퇴적층을 쌓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둘째날,새벽같이 일어나 진주성에 갔다. 진주성에는 김시민장군의 동상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진주성에서 논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기생 중에서 제일 좋은 예기인 "논개"가 열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왜적의 적장과 같이 놀다 왜군의 적장과 "남강"으로 빠졌다는 내용이다. "논개"는 낮은 신분인 기생인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서 인생을 마친것이 너무나도 대단하다.

다음은 배를 타고 "한산도"로 갔다. 이순신장군께선 왜군과 이 한산도 앞 바다에서 싸우셨다. 이 때 이순신장군께서 "학익지전법"으로
"화살촉전법"을 사용한 왜군를 둘러싸고 공격을 해 승리를 거둔후
삼도수군통제영을 제승당에 두셨다. 우리는 제승당 수루에 올라가 한산도의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 때 이순신장군의 심정을 느껴보며 시조를 읊었다.

다음은 "충렬사"로 갔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건물로 임금인 선조께서 이순신장군을 위해서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이순신장군이 얼마나 훌륭한 장군님이지 더욱 더 잘 알수 있었다.

다음은 "세병관"에 갔다. 세병관을 가는 길에 돌로 만든 장승인 "벅수"를 보았다. "벅수"는 마을의 액을 물려쳐준다는 뜻에서 세워졌다
크고 긴 이빨을 가진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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