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제 목 : 고적답사를 다녀와서.. |
조회수 : 2040 |
작성자 : 김기연 |
작성일 : 2003-08-09 |
이번 방학에도 어김없이 고적답사를 갔다. 가는 길에 잠을 못자서 그런지 잠이 스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송광사라는 절에 어느샌가 다가와 있었다.
송광사의 입구에 들어서자 비사리 구시가 눈에 띄였다. 목사님께서 굵은 삶과 가는 삶은 마음가짐의 차이라고 하셨다. 송광사는 3대 보물사찰중에 하나이다. 송광사안에는 관음전이 있는데 고종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나도 이것을 보고 즐겁고 기쁜 삶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두번째로는 고인돌 공원에 갔다. 고인돌 공원에 제일 많았던 것은 개석식 고인돌인데 너무 간단해서 무덤인지 아닌지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고인돌은 옛 사람들 중에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의 권력을 보여준다는데 나 또한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이와 같은 막강한 힘을 지녀 사람들을 도와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서 주변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의미있는 죽음을 맞고 싶다.
세번째로는 낙안읍성에 갔는데 그 앞에 해자라는 방어시설이 있었다. 해자를 건너오는 동안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돌을 떨어트려 왜군들이 성에 올라오지 못하게 했던 조상들의 슬기로운 지혜였던것이었다.
네번째로는 왜성에 갔다. 왜성은 일본사람들이 쌓은 성인데 부산에 모든 보급물자를 보관하기 위해서 세웠고 이순신장군이 두려워서 육지전을 위해서 성을 쌓았다고 한다. 왜성 앞의 노량 앞바다는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신 이순신장군에게 깊은 감사와 애국심을 배울 수 있었다.
다섯번째로는 지구의 역사가 층을 이루고 있는 상족암에 가게 되었다. 상족암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대생물중 하나인 공룡의 발자국이 있다는 사실에 반신반의 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막상찾아가서 실제로 보니 그리 크지 않아 이게 정말로 공룡발자국인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바닷물이 자꾸 밀려오는 바람에 우리는 발자국을 그리 오래 보지 못하고 퇴적층을 보러 갔다. 그곳에서 목사님께서는 나의 10년 20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지금부터라도 퇴적층과 같은 나의 모든면을 발전시켜서 층층이 쌓아올려 좋은 흔적을 남기자고 하셨다.
여섯번째로 우리는 관음포로 향했다. 관음포는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처음으로 안치해 놓은 곳이다. 이순신장군은 우리나라를 위해 힘쓰셨는데 전장에서 장엄한 최후를 맞이하신것에 대해서 참으로 안타깝고 측은한 맘이 들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그 업적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중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무엇인가 도움이 될만한 일을 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단한 하룻밤을 보내고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아침에 우리는 진주성으로 향했다. 진주성은 진주대첩에서 돌아가신 김시민 장군이 쌓은 것이다. 김시민 장군동상에서 조금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의기사라는 사당은 논개의 사당이다. 나는 의기인 논개처럼 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는 무슨일이든 할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를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 놓게 되었다.
30분정도 배를 타고 한산섬에 도착했다. 한산섬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 전법으로 전투에서 이겨 승리하여 삼도 수군 통제영을 제승당으로 삼은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전쟁을 힘만가지고 되는것이 아니라 지혜와 경험을 통하여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다가 넓게 보이는 수루에 올라가 이순신 장군의 시조를 읊어 보았다.
나는 이 시조를 읊고 나니 이순신 장군께서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하셔서 병이 나셔서 안타까웠고 그때의 이순신장군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수 있을 것 같았다.
임진왜란이 끝난후에 삼도 수군통제영을 통영으로 옮기고 선조가 이순신장군을 기리기 위해 충렬사를 짓고 1년에 두번 제를 올렸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순신장군이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힘쓰셧는지 몰랐었다. 그런데 한산섬과 충렬사를 통해 그분이 얼마나 훌륭한 장군이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충렬사를 나와 세병관에 가는 도중 "벅수"를 보았는데 이것은 돌로만든 장승으로 마을의 액운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세병관은 전쟁은 끝났고 태평성대를 누리자는 뜻에서 세웠다고 한다. "6년간의 임진왜란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현판을 걸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쟁의 낳은 비극을 엿볼 수 있었다.
세병관을 나와 외도로 갔는데 외도는 배에서 내리자 마자 마치 천국을 보는듯한 신비롭고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이것은 한부부의 정성과 관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목사님께서는 사람은 어떻게 가꾸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나를 잘 가꾸기 위해서는 지식, 경험, 믿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