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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픔을 통해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 |
조회수 : 1836 |
작성자 : 정재우 |
작성일 : 2004-01-09 |
1월 5일 새벽 2시쯤에 일어나 보니 목이 아프고,머리도 아팠지만 만약에 거기에서 포기했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기쁘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역사기행을 통해 전 많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었다.
2시 30분쯤에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3시에 출발을 했다.차 안에서 계속 자고 또 자고 그래서 5,6시쯤에 아침밥을 먹었다.메뉴는 김치찌개와 김밥이었고,아침밥을 맛있게 먹고,처음 목적지였던 운강고택으로 갔다.
운강고택에 가보니 자물쇠가 꽉 잠겨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운강고택 주변에는 만화정도 있었는데 만화정에도 자물쇠가 잠겨있어서 사진만 찍고 다음 목적지로 갔다.
소싸움과 감이 유명한 청도에 가서 석빙고에 가봤다.그곳에서는 목사님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듣고, 다음 목적지로 갔다.
도동서원은 김굉필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이다.
그 다음에 간 곳은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에 가보니 정말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조금은 깜짝 놀랬다.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를 들리고 점심을 먹었다.목이 아파서 갈비탕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
점심을 먹고 힘을 내서 육신사에 갔다.
육신사에는 팔작지붕과 부섭지붕으로 건설되어 있었고,태고정도 있었다.
다음 목적지 삼가헌으로 가니 중요민속자료 제 104호였고, 이 가옥은 박성수가 1769년에 건립하였다. 사랑채는 남자가 거주했고,안채는 여자가 거주했다.한국연못은 거의 다 네모안 한 가운데 동그란곳이 있다.
다음 목적지로 가니 고분이 아주 많은 곳에 갔다.고분은 옛날 추장 같은 사람의 무덤이였고,목사님께서 5분동안 자유시간을 주셔서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역사기행 첫날 마지막으로 간곳은 쌍암고가 였다.그곳을 지배하려던 동학농민운동을 하려던 분들 작전이 세어 나가서 쌍암고가에서 많은 피해를 입으셨다.이렇게 역사기행의 첫번째날이 무사히 끝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역사기행의 2번째날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가산산성앞에서 초코우유,빵과 귤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가산산성으로 갔다.가산산성은 조선 인조때 건설되었고,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은 남한산성,부소산성이 있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두번째로 간 곳은 송림사였다. 이 송림사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송림사 오층전탑도 옆에 있었다.
우리나라는 돌을 아주 잘 이용해서 돌탑도 잘 쌓았다.
송림사의 기둥비율이 3:2:1로 되어있다.아주 특이한 기둥비율이였다.
세번째로 간 곳은 내가 가본곳 다부에 있는 전쟁기념관으로 갔다.
이곳 다부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이 죽었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UN참전은 16개국이 참가했는데 그 참가국가들이 미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남아프리카 공화국,벨기에,터키,룩셈부르크,타이,에티오피아,그리스,필리핀,프랑스,네덜란드,영국이 있었고,
6.25때문에 부모를 잃은 소녀,전쟁고아는 10만명이 넘었다.
목사님께서 오늘의 명언을 들려주셨다.
맥아더 장군님의 말씀을 들려주셨다."노병은 죽지않는다.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언이었다.
네번째로 간곳은 부용대였다.부용대에 가보니 정말 경치가 멋있었고,하회마을이 다보여서 하회마을을 우리가 정복한것 같았다.
하회마을을 잘보니 배모형이어서 하회마을에 돌담이 없었던것 같다.그 때문에 우물도 파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간곳은 부용대에서 봤던 하회마을이었다.
하회마을의 뜻은 강이 돌아 간다는 뜻이었다.하회마을은 유성룡이 살았던 곳이고,하회마을의 유명한 곳은 남촌댁과 북촌댁이 있었고,남촌댓에 1954년 불이 나서 사랑채와 별당만 남아 있었다.
별당은 작은 마님이 사는 곳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병산서원이었다.
병산서원은 유성룡 선생님과 유진을 배향한 서원이고,입교당 동쪽에 있는 것은 동재,서쪽에 있는 것은 서재였고,존덕사도 안에 있었다.
피곤을 뒤로 하고 다음으로 간 곳은 삼구정이었다. 삼구정은 아들 김세경이 88세의 어머니를 위해 만들어 준 정자이다.
이 삼구정을 보고 "아 나도 이제부터 효자가 되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으로 간곳은 안동 신세동 칠층석탑에 갔다.
이 탑은 국보 16호이고,옆에는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도 있었다.
그 다음 목적지는 안동 임청각 정침 군자정에 갔다.
이 종택은 고성 이씨의 종택이고,이 집이 일제시대 때문에 완전 망했고,망한 이유는 백성들의 힘이 없어서 이 집이 망했다고 한다.
그 다음 간 곳은 마지막 목적지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에 갔다.
이 탑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탑에 꼽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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