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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역사기행 일기 (다함이) |
조회수 : 1622 |
작성자 : 윤다함 |
작성일 : 2004-01-16 |
세 번째 날 : 마지막 날
오늘은 어린이 역사기행 마지막 날이다. 주변의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소리로 인해 졸린 눈을 떴다. 씻고 내려와서 배낭을 차 트렁크에 넣고 출발했다. 물론 오늘도 "마지막 날이니까 더욱 잘 배워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말이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약 900년이나 같은 자리를 지켜온 봉정사 극락전에 갔다. 극락전은 너무 오래 되어서 지금은 페인트칠이나 벽, 지붕 같은 것을 다 공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붕을 공사할 때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종이에는, "이 지붕은 1304년에 공사를 했다"고 써있었다. 보통 기와지붕은 지은 지 최소 100년에서 최대 200년마다 갈아주는데(공사) 이 말은 극락전이 약 900년 정도 됐다는 말이다. 그 곳에는 한국에 대표적인 3층 석탑도 있었다. 3층 석탑은 참 멋있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조각된 돌 위에 처마가 있는 것도 꼭 사람이 사는 집 같아서 신기했다. 목사님께서는 우리에게 극락전 앞면과 측면의 칸을 알아오고 극락전의 기둥과 대화를 나누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 : 너 진짜 900년 정도 된 거 맡니?
기둥 : 맞아, 사람들이 꽤 운이 좋더라.
나 : 뭐?
기둥 : 그 종이 발견한 거 말이야. 지붕은 조심성, 책임감이 많기 때문에 그 종이를 아주 잘 보관했지. 그 애 성격은 좀 드문 성격이지만 말이야.
나 : 어... 900년이나 됐다니 놀랍다! 목사님께서 그러시는데 현대 문화 보존 기술은 많이 발달되어서 보존기간이 적어도 2000년 정도래. 그러니까 안심하고 잘 있어. 무너질 생각 하지 말구!
기둥 : ㅋㅋ... 너 꽤 재미있구나!
나 : 뭐, 내가 한 유머 하지!
기둥 : 그래, 고맙고 너도 잘가, 다음에 경북 안동에 오면 여기도 들리고, 잘가!
나 : 그래, 잘있어!
그리고 극락전에 앞면 칸은 3칸, 측면 칸은 4칸이었다. 측면이 짧아 보여서 당연히 한 2칸 정도 될 줄 알았는데 좁게 4칸이었다.
목사님께서는 극락전처럼 오랜 시간동안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걸 본받으라고 하셨다. 공부 할 때도, 뭘 할 때도 집중해서 열심히 노력하며 하라고 하셨다. 또 내 생각에는 그래야지 세상에 불량스러운 인본주의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결심했다. 꼭 그렇게 살리라∼!
그 다음에 우리는 맛 나는 김밥을 먹고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님께서 벼슬자리를 관두시고 세우신 서원이다. 원래는 서당만 있었는데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의 제자들이 선생님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직접 세우신 도산서당에는 네모난 연못이 있었다. 그 곳에는 군자를 나타내는 연꽃이 피었다고 한다.
또 농운정사라고 하는 기숙사는 신기한 점이 있다. 위에서 볼 때 이 건물은 장인 공(工)자처럼 생겼다. 아니 공(工)자처럼 생긴 게 아니라 공(工)자이다. 이 말은 학생들이, 그들이 사는 기숙사에 모양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원래 일반건축에서는 장인 공(工)자를 꺼려한다고 한다. 또 원래 보통 집들은 대청마루 앞에 마당이 있는데 이 곳은 대청마루 앞에 또 하나의 돌마당이 있다. 참 희한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 곳은 뒤에 또 하나의 마당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뒤로도 들어오는 문이 있다. 또 이 기숙사는 문이 참 특이하다. 한 방은 문이 보통 문처럼 두 개의 똑같은 문을 당기는 식으로 되어 있고 한 방은 하나의 문이 있고 그 문 바로 옆에 조그만 창문이 있다. 또 한 방은 문이 두 개가 있고 창문들이 각각 하나씩 문 옆에 있다. 마지막 한 방은 조금 작은 문이 하나 있고 비슷한 크기에 문이 꼭 창문처럼 마루에서 붕 떠있었다. 심지어는 벽에 나 있는 문은 세로로 길고 다른 쪽에 나 있는 문은 가로로 길다. 이 뜻은 생각도 다양하게, 뭐든지 다양하고 융통성 있게 살아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이 기숙사 마루에 왼쪽은 햇빛이 들어오고 오른쪽은 그늘졌는데 왼쪽은 휴식처이고 오른쪽은 공부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또 밖에는 풍경이 아주 좋았다. 그 곳에 이름은 도산면(토계리, 아마도 내 생각에는 퇴계가 이 말에서 나온 듯?)이다. 또 서원이 있는 산 이름도 도산이다.
또 다른 건물로는 퇴계 이황 선생님의 영정을 모신 사당과 유물 전시관, 도서실 등이 있었다. 이 여행 후로 나는 퇴계 이황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또 우리는 퇴계 이황 선생님의 자손이신 시인이시면서도 독립 운동가이신 이육사의 생가와 시비에 갔다. 생가는 아주 깨끗하게 보였다. 또 시비에 적힌 시도 있었다. 제목은 절정, 우리 나라가 일본 놈들에게 거의 정복되었을 때 이육사 선생님의 마음을 표현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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