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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역사기행문이예염. |
조회수 : 1535 |
작성자 : 김상진 |
작성일 : 2004-01-19 |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 상진이예요.
이번 역사기행 갈땐 저번처럼 또 목사님을 잃어버려 놓칠 뻔한일이 일어날까봐 제일 걱정이 된다.
너무 빨리 출발하여 차안에서 친구들은 다 잠들었는데 난 잠이
안와 눈을 뜬채 있었다.
처음에 도착한 곳은 운강고택이다. 운강고택은 부자집 같지만 마당 가운데 나무를심어서 할일이
너무 많은것 같다. 그 다음엔 청도 석빔고에 갔다.
석빙고는 신라시대때 진흥왕이 만들어 그 때는 기둥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 세종때 부터 돌의 탄력을 이용한 석빙고를 만들어서
그때부터 기둥이 사용이 되지 않았다.
석빙고의 좋은점
1.기둥이 없다. 2.둥근 모양이다. 3.대따 시원하다.
다음에 간곳은 도동서원이다. 도동서원은 서당에서 실력이 좋은 사람이 가는곳으로 선비들이 학문에
게 인사하라고 일부로 낮혀두엇는데 그 문이 한주문이다.
그리고 도동서원은 김괘필을 섬기는 사당이다.
그다음에 간곳이 육신사다. 육신사는 단종이 왕이 됫을때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자 단종이 다시 왕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김진이
배신을해 박행열은 사형장으로 가면서
시를 읆엇다.
"이몸이 죽어 무엇이 될꼬하니 봉제산 낙락장송이 될거하니"다.
그다음에 간곳은 낙산군 고분이다. 가야시대의 무덤이라서 하늘에
거리가 조금이라도 가깝기위해 높이 무덤을 쌓았다.
고적답사 제2째날이다.
처음에 간곳은 가산 산성이다. 가산 산성은 조선 인조때 만들어진 석축 산성이며 밑에 구멍을 뚫어 물
을 들여보내고 왜적이 거기로 못들어오게 쇠창살을 썼다.
그 다음에는 송림사에 갔다. 송림사의 멋있는건 각각 화려한 창살이다. 중국은 벽을 잘만들어 전탑이 많고
우리나라는 돌을 잘 다루어 석탑이 많았다. 전탑은 있다해도 딱 2개 뿐이다.
그 다음에 간 곳은 국군 기념관이다. 6.25 전쟁에 참전한16개 국기가 달려있었다.
왜 한 핏줄 한 민족이 소로 싸우는지 모르겠다. 빨리 서로 통릴을 했으면 좋겠다.
그 다음에 간곳은 안동 하회 마을이다. 거기엔 유성룡 선생님이
태어나셨으며 배모양을 하고 있다.
유성룡 선생님은 퇴계 이황이 장차 큰 아이가 될것을 예언하셨다 . 임진왜란때 피난을 가면서 쓴 책이 있는데
그 책이 장비록이다.
다음에 간 곳이 병산서원이다. 병산서원은 류진의 서원이다.
그 다음에는 삼후성을 갔는데, 세 개의 돌이 거북을 닮아서 이름이 그렇고 길이가 17m인
국보 제 6호 7층 석탐이 있다.
역사기행 3째날이다.
오늘이 집으로 가는 날이다. 역사기행을 시작한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집에 가니 좀 섭섭했다.
처음에 간곳은 봉정사다. 봉정사는 퇴계 이황을 받들고 이황의
제자들이 살았던 곳이다.
그 다음은 부석사에 갔다. 부석사는 의창대사가 삼국통일을 기원
하며 만들은 절이고, 청다리는
다리 밑에서 아기를 주워 생긴 말이다.
그 다음에 간 곳은 소수서원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KBS에서 취재를 했는데, 그때 나도 나온 줄 알았는데 안 나와서
조금 섭섭했다.
그리고 읍내리 벽화 고분은 고구려의 고분으로 한강 이남에 있는
유일한 고분이다.
고분속은 시체 등..등꼴이 오싹한 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벽화만 그려져 있어 안심이 되었고,
사진을 찍을때 JUMP를 해서 찍으니 꽤 잘 보일것 같다.
끝으로 석빙고를 보면서 너무 시원해서 자연산 얼음이 먹고 싶어서, 우리집에 미니 석빙고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 역사기행에는 어떤 곳을 갈 것인지 벌써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역사기행 하는 동안, 열심히 운전하신 집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목사님도 감사드리고여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