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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 기행문은 요~~~꼭 읽어보세요. | 조회수 : 1827 |
작성자 : 박행신 | 작성일 : 2004-01-20 |
이 글은 첫번째로 글을 올린 정재우 군의 기행문(게시판 280번)을 조금 고친 것입니다.
친구들의 글을 읽어보니까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린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과 다른 내용들도 꽤 있구요.
이 기행문을 읽어보고 여러분의 기행문을 고쳐서 스크랩북에 첨부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날
1월 5일 새벽 2시쯤에 일어나 보니 목이 아프고, 머리도 아팠지만 만약에 거기에서 포기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기쁘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역사기행을 통해 전 많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었다.
2시 30분쯤에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3시에 출발을 했다. 차 안에서 계속 자고 또 자고 그래서 5 ,6시쯤에 아침밥을 먹었다. 메뉴는 김치찌개와 김밥이었고,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처음 목적지였던 운강고택으로 갔다. 운강고택에 가보니 자물쇠가 꽉 잠겨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운강고택 주변에는 만화정도 있었는데 만화정에도 자물쇠가 잠겨있어서 사진만 찍고 다음 목적지로 갔다.
소싸움과 감이 유명한 청도에 가서 석빙고에 가봤다. 그곳에서는 목사님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듣고, 다음 목적지로 갔다. 도동서원은 김굉필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이다. 그 다음에 간 곳은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에 가보니 정말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조금은 깜짝 놀랬다.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를 들리고 점심을 먹었다. 목이 아파서 갈비탕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
점심을 먹고 힘을 내서 육신사에 갔다. 육신사에는 팔작지붕과 부섭지붕으로 건설되어 있었고, 태고정도 있었다. 다음 목적지 삼가헌으로 가니 중요민속자료 제 104호였고, 이 가옥은 박성수가 1769년에 건립하였다. 사랑채는 남자가 거주했고, 안채는 여자가 거주했다. 한국연못은 거의 다 네모안 한 가운데 동그란 곳이 있다.
다음 목적지로 가니 고분이 아주 많은 곳에 갔다. 고분은 옛날 추장 같은 사람의 무덤이었는데, 목사님께서 이곳에서 5분 동안 자유시간을 주셔서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역사기행 첫날 마지막으로 간곳은 쌍암고가 였다. 그곳을 지배하려던 동학농민군들의 작전이 세어 나가서 쌍암고가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목사님은 배신자가 되지말고, 역사의 VIP가 되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정말 역사에 길이 남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래서 우리들은 함께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역사의 VIP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이렇게 역사기행의 첫째 날이 무사히 끝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둘째날
역사기행의 둘째 날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가산산성에 올라서 초코우유와 빵과 귤을 먹는 것을 시작하였다. 가산산성은 조선 인조 때 건축되었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은 남한산성, 부소산성이 있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두번째로 간 곳은 송림사였다. 이 송림사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절이다. 그곳에는 송림사 오층전탑도 옆에 있었다. 전탑은 중국에서 전해 온 것인데, 우리나라는 돌을 아주 잘 이용해서 돌탑을 더 많이 쌓았다. 송림사 대웅전의 기둥비율은 3:2:1로 되어있다. 아주 특이한 비율이였다. 그리고 문살도 아주 예뻤다.
그 다음에는 다부에 있는 전쟁기념관으로 갔다. 이곳 다부에는 6.25 때 큰 전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이 죽었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분들의 희생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6.25 때는 UN군이 16개국이 참가했는데 그 참가 국가들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터키, 룩셈부르크, 타이, 에티오피아, 그리스, 필리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다. 그리고 6.25때문에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는 1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목사님께서 맥아더 장군님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언이었다.
그 다음에는 하회마을이 한 눈에 내려더 보이는 부용대로 올라갔다. 부용대에 가보니 정말 경치가 멋 있었고, 하회마을이 다보여서 하회마을을 우리가 정복한 것 같았다. 목사님께서는 하회마을의 모양이 배모양이어서, 그 마을 사람들은 배가 가라앉을까봐 돌담도 쌓지 않고, 우물도 파지 않았다고 하셨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부용대에서 봤던 하회마을이다. 하회마을의 뜻은 강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하회마을은 임진왜란 때 명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이 살던 곳이고, 하회마을에는 옛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유명한 곳은 남촌댁과 북촌댁인데, 남촌댁은 1954년 불이 나서 대문채와 사랑채, 그리고 별당만 남아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병산서원이다. 병산서원은 류성룡 선생님과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고, 강당인 입교당의 앞에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존덕사라는 사당도 있었는데, 그곳에는 류성룡과 그의 아들 류진을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제사를 드린다고 한다. 나는 그분들을 존경하기를 하지만 결코 그 앞에서 절하지 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어린이기 때문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음으로 간 곳은 삼구정이다. 삼구정은 화산 김세경이 88세의 늙으신 어머니를 위해 만들어 준 정자라고 한다. 삼구정을 보면서 ‘아 나도 이제부터 효자가 되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을 뿐 아니라 부모님께도 효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다음으로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에 갔다. 이 탑은 국보 16호이고, 옆에는 법흥동 고성이씨 종택인 임청각도 있었다. 이 집은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지원하다가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완전 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힘이 없으니까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신세동 칠층 전탑과 임청각의 앞으로는 일본사람들이 놓은 철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 철도 때문에 자랑스렁 문화유산이 많이 파괴된 것을 보며 안타까웠다.
우리는 둘째 날 마지막 목적지인 안동 동부동 오층 전탑에 갔다. 아름다운 탑이었는데 탑에 있는 보물을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왔던 당나라 군사들이 도둑질을 해갔고, 그 곁에 있는 당간지주는 6.25 때 부서졌다고 한다.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힘이 커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기행이 이렇게 순조롭게 시작되어,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어서 하나님이 지켜주시구나 라는 느낌도 들었다. 역사기행이 끝난 후에는 피자헛에서 목사님의 생신파티를 하였는데, 즐거웠다.
셋째날
역사기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6시에 일어나서 아침밥도 먹지 못한 채 봉정사로 출발하였다. 봉정사에 있는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극락전 지붕에서 1363년에 수리를 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건물은 그보다 대략 150~200년 전에 지어졌을 것이니까 지금보터 약 9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아주 오래된 나무로 된 집이었다.
목사님께서는 극락전은 한 곳에 900년이나 앉아 있었다고 하시면서 한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해도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라고 하셨다. 정말 그렇게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봉정사의 대웅전도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오래된 건물이다.
그 다음 목적지는 도산서원이었다. 도산서원으로 가는 도중 차 안에서 김밥을 먹었다. 참 맛 있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은 도산에서 태어나셨고, 그래서 경상북도 쪽에 인재가 많았던 것 같았다. 도산서원은 대원군 이 서원을 없애라는 명령에도 살아난 서원이다. 꼭 필요한 서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 목사님께서 명언을 들려주셨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는데, 우리 집 가훈과도 비슷했다.
도산서원 안에는 농운정사라는 기숙사도 있었고, 어린이들이 공부하던 서당도 있었다. 특히 서원 안에 광명실이라는 도서관이 있었던 것에 놀랐다. 옛날에도 도서관이 있었다니. 그곳에는 퇴계선생님의 책과 임금님이 내려주신 책이 4300권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산서원 전교당에 '도산서원'이라고 한자라고 써져 있었는데, 이 글씨는 한석봉이 쓴 글씨라고 한다. 한석봉이 그 글을 썼다고 해서 처음에 깜짝 놀랐고, 감탄하였다. 또 서원 안에는 전시관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청려장, 흑단 연, 강회록, 안석, 완석, 등잔, 백자타호 등의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퇴계 이황 선생님이 쓰시던 것들이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이육사 동상이 있는 곳이었다. 이육사 시인의 본명은 이활이었고, 쓰셨던 시는 대표적인 청포도와 광야가 있다. 이육사 선생님은 이곳에서 태어나셨고, 평생 동안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열일곱 번이나 감옥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그가 첫 번째 감옥에 가셨을 때 죄수번호가 264번이었는데, 그래서 이름도 이육사(264)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시비가있었는데, 절정이라는 시가 써 있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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