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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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강원도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조회수 : 1618
  작성자 : 최유림 작성일 : 2004-07-23
-첫쨋날-

오늘은 내가 처음으로 가는 역사기행을 가는 날이다. 막상 교회로 갈려고 하니까 왠지 너무 떨리고 역사기행은 어떻게 할까? 아침엔 언재 출발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드디어 출발해서 도착한 곳이 영월에 있는 선돌이다.영월선돌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돌인데,너무 멋있어서인지 마치 아주 기술좋은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 노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점점 다음에 갈 곳이 궁금해 졌다.그 다음에 간 곳은 봉래산이다. 봉래산에선 사육신 박팽년의 시조(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다.)라는 시조이다. 그리고 세번째로낙화암을 갔다. 낙화암은 궁녀가 임금을 위해 약 3000명쯤 꽃잎처럼 뛰어내린 곳이다. 목사님이 왕을 위해서 죽은 궁녀나,사람들을 보고 순교자라고 하셧다. 난 절벽을 바라 보면서 저 절벽에서 궁녀들이 용감하게 뛰어 내렸구나.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차를타고 4번째로 간 곳이 관풍헌이다. 관풍헌은 단종이 사약을받고 사망한곳이다. 단종이 사약을 받은 이유는 힘이 없어서이다.아무리 그래도 힘이 없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은일이다.그리고 목사님께서 이런일 때문에 힘의 종류세가지를 가르쳐 주셨다. 첫번째 힘:육체의 힘 두번째 힘:지식의 힘 세번째는:유적의 힘이다. 조선시대 6대왕 단종은 살아있을 때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그 바 꾼 이름은 노산군이라고 한다. 노산군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다들 저주가 두려워서 단종의 시체를 묻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영월의 호장 엄엉도가 시신을 조사해서 묻어줬다고 한다. 그리고 노산군의 릉은 아주 높은 산위에 있는데 그냥 평봉한 사람들의 릉은 조그만한 언덕 위에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간곳은 왕방연의 시조비였다. 세조의 명을 받고 단종을 사사할 약을 가지고 온 왕방연은 단종을 죽일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명을 받은 금부도사가 왕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다음의 시는 왕방연이 단종에 대한 슬픈 마음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을 여의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시를 읽기만 해도 왕방연의 슬픔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전해 진다.
5번째로 청령포에 같다.
배를 타고 간다고 해서 얼릉 우리가 탈 배를 보고싶다고 생각하였는데, 내 기대가 한순간에 날라가 버렸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내가 생각한 배와 90% 다른 배여서 실망하였다.
그래도 배는 배니까 마음을 달래며 배를 탔다.배를 타고 가는데 왠지 너무 조금 간 것 같에 실망하였지만, 여기서 볼 것이 무었인지 점점 궁금해 졌다.
청령포엔 유난이 소나무가 많았는데 그 곳에서 가장 눈길에 끌리는 소나무는 소나무들의왕같은 관음송이었다. 관음송이란 명칭은 이 소나무가 단종의 고통을 지켜보았고, 그의 탄식하는 울음소리를 들은 소나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관음송은 다른 소나무와 달리 뿌리가 쌍으로 나 있으며 두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 349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아주 특별한 모습의 소나무였다.
관음송은 아주 멋있게 자라져 있었다. 얼마나 큰지 이곳에 있는 소나무들중에서 가장 멋지고 큰 것 같다. 난 이 관음송이 세상에 1나밖에 없을 것 같에 나도 이렇게 멋지게자라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5번째로 간 곳이 환선굴이었다.
첫번쨋날에 가장 기역에 남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왜냐하면 환선굴에서 가장 많이 머리를 부딧쳤기 때문이다.
환선굴을 들어올 때 핼맺을 쓰라고 해서 쓰고 들어가 다행이지 그 핼맺을 쓰지 않았다면 난 부상을 입었쓸지도 모른다. 환선굴에 목사님이 박쥐가 있다고 해서 난 그 말을 순수하게 믿고 말았다. 그래서 무척 기대를 하고 들어갔는데 없어 실망하였다. 그리고 환선굴에선 배가 쪼금씩 아팠다. 그래서 더더욱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 많고 간절이 바랬다.
그리고 6번째로 미인폭포를 갔다.
미인폭포를 볼려면 산을 올라가야 했다. 점점 가면서 폭포소리가 들려오고 폭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난 공포를 떨며 산을 올라갔다. 내가 도착했을땐 이미 목사님이 설명을 하시고 계셨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듣자 하며 쉬면서 들었다. 미인폭포는 어떤 미인이 자기는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 없다고 하면서 늙었을 때 어떤 한 남자에게 고백했지만 자기의 모습을 그 남자가 말해서 충격받아 폭포에서 떨어진 곳이 바로 미인폭포다.
난 그 예기를 듣고 너무 뽐내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반성했다.
역사기행 첫째날의 마지막 목적지는 척주동해비였다. 미수 허목이 그곳에 있을 때 홍수가 나서 바다의 신이 노하였다고 생각해 척주동해비를 세웠다고 한다. 바다의 신이 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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