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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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처음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조회수 : 1745
  작성자 : 이규용 작성일 : 2005-01-16
첫재날
오늘은 새벽 7시에 교회에 나와서 역사기행을 갔다.
역사기행은 어디로 가냐하면은 강화도에 간다.
거의 9시에 강화도에 도착해 행주산성 이라는 데를 도착했다.
거기에는 산성의 도성,산성,읍성등이 있다.
산성의 도성은 도시에 짓는 성이고,산성은 산에 짓는 성이고,읍성
은 마을에 짓는 성이다.
그리고 또 행주대첩이란 것도 있는데 그것은 싸움을 벌여 일본과 크게 싸워 이긴 것이다.
치마겉에 겉치마를 해서 돌을 날라 싸웠다.그곳에서는 권률 장군이 지휘를 하도록 했는데 사양을 했다고한다.
권률 장군을 나라를 지키는데 의로움을 받았다.
임진왜란때 일본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올때 물이 흙과 섞여있고 신발같은 것은 일본에서 가져왔는데 이순신 장군 때문에 쭉 못올라왔다.
덕진진,초지진 작전을 짤때 진은 중요하였다.
덕포진에서 포격전이 많이 일어 났다.
고려시대의 뱃사공 손돌이 몽골 군대가 처들어왔을때 임금을 배에태워 피난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곳으로가서 왕이 "왕을 팔려고 그러는구나"라고 해서 손돌의 머리를 치려고 하는데 손돌이 바가지를 꺼내서 바가지를 강물에 던져 이 바가지를 따라가라고 그랬다.
그러고 손돌은 죽었다. 그래서 왕은 그바가지를 따라갔고 무사 할수 있었다.
역사에 손때가 묻으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옛날 자료가 있는것이다.
신미 양요때 이곳에서 큰싸움이 일어났다.
덕진돈때 덕진돈 대의시 작은 재너럴 셔먼이란 배가 처들어와서 대포를싸서 침몰시켰다.
그런데 그때 목사도 죽었다.
그래서 미국이 화가나서 싸웠다.
그래서 어려운일을 당했다.
병인양요,신미양요 크게싸웠던대 미국과 전쟁을 했다.
신미양요,던진진,초지진이 부셔진다.
어재현,어제순 장군이 광성보에서 싸우다 죽었다.
용머리 처럼 생긴곳에 돈대를 지어서 용두돈대이다.
정족 산성 삼랑성 첨성당에 정상에있다.
양헌수 장군이 매복을 해서 이겼다.
군마 강화도 왕립 도서관이 있다.
전주의 사고를 만들었다.
외규장각이 있는데 책들이 프랑스에 있다.
정즉산성 양헌수 장군이 크게 왜사람을 죽였다.
고구려 시대때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했던 스님이 전등사를 세웠다.
전등사 절의 지붕밑에는 이상한 여자 조각이 있다.
이절은 정화 공주가 옥등을 선물했다고 한다.
대웅전이 절의 중심이다.
병을 고치는 부처님도 있었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오만년자손 병인작 심미립

둘째날
우리는 6시30분에 출발했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고갔다.
그런데 장소는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이라는 산을 갔다.
목사님이 마니산에 해발은 468m이고 계단은 918개라 그러셨다.
마니산을 올라갈때 계단이 918개인지 새어봤다.
그런데 너무너무 힘들어서 421걸음에서 헤깔려거 319,194이렇게 헤깔렸다.
드디어 정상이다.
내가 5등이다.
또 뒤에는 누가 따라와서 내가 더 빨리가려고 속력을 좀더 냈다.
그래서 정상에 올랐다.
거기에서는 올라오면 씨름장 같은게 있다.
그건 바로 산에게 제사를 드리던 곳이다.
사람들은 땅이 네모처럼 생겼고 하늘은 둥글다고 생각햇다.
힘들었지만 정상에 올라보니 상쾌했다.
나도 옛날에 태어나서 자랑스러운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이규보 선생님은 옛날에 어리실때 별로 유명하지 않으셨는데 크셔서 유명해 지셨다.
나도 지금은 안유명하지만 커서 유명한 규용이가 될것이다.
(가장 즐거웠던 곳)
마니산을 올라간것도 재미있었고 마니산에서 사진찍은것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어서-)-)-)
선원사 (절)터 지금은 불타있다.
8만대장경이 모두 글씨가 일치했다.
우리는 강화 역사관 으로 갔다 강화역사관 안에는 무관과 문관의 옷차림새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안은 우리가 가본곳의 사진이 많이 있다.
신기한 고인돌을 만든 원리도 있다.
2전시장은 내가 좋아하는 한자책이 놓여있었다.
아주큰 종도 있었고 도자기도 있었다.
(목판인쇄법)
1.먹솔로 목판위를 먹물로 칠한다.
2.종이를 덮는다.
3.종이를 솜뭉치로 골고루 떼어낸다.

수요일 (마지막날)
우리는 자유의 다리를 보았다. 그런데 조상들은 슬퍼하였다.
남과 북이 갈라져있어서 북한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워졌다.
우리는 참고 이겨내면 21세기의 주인공이 될것이다.
우리는 다시 반구정으로 갔다. 이곳은 황희정승과 관련된 곳이다.
황희정승은18년동안이나 정승을 지내면서 옷도허름하게입고 지내셨다. 백성을 위해 잘해주는 관리를 (청백리) 라고한다. 다시 화석정으로 왔다.율곡선생님의 고향은 파주다. 그리고 강릉에서 사셨다가 화석정으로 와서 공부와 태도등을 배우시고 8살때 시를 만들고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하였다.율곡이이 선생님은 장원을 9번이나 했다고 해서 9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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