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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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역사기행 조회수 : 1627
  작성자 : 이석현 작성일 : 2005-01-19
기행문
1월10일~12일까지
나에게는 3번째 역사기행이다.작년의 겨울역사기행과 같을 줄 알았다.모이는 시간이 7시였
다.평소 같으면 1시30분까지 모이라고 하는데 이번 역사기행에는 아침에 가기 때문에 약간
긴장이 풀린 듯 마음놓고 잘 수가 있었다.그리고 이번에 석주가 가게 되었다.6시50분쯤 교회
로 갔다.내 친구들은 1~2번쯤은 갔다와서 그런지 이야기하고 떠들고 있었다.출발하기도 전에
밤에 숙소에서 누구랑 같이 잘 것인지 이야기를 하였다.일단 정한 것은 현웅이,지훈이.다찬
이,석주,다함이형이였다.나까지 합해서 6명이였다.차에 탈때도 같이 탔다.졸려운데 해가 뜬데
다가 아침이니까 친구들도 떠들어서 못 잤다.그래도 앞에 앉은 여자애들하구 게임도 하고
즐겁게 행주산성으로 갔다.가는 동안 서울을 거쳐서 가기 때문에 차가 많이 밀렸다.그런데
뒤에 앉아있는 정섭이가 창문을 열고 리마리오의 주특기 오~~베이베를 했다.어떤 아저씨는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보시기도 하고 웃으시기도 하고 따라하시는 분도 계셨다.그리고 드디어
행주산성으로 갔다.첫 지점 행주산성!!하고 수첩에 적어 놓았다.행주산성에서 기다리던 사람
도 많았다.그리고 꼭대기를 향해 걸어갔다.권율장군 동상앞에 섰는데 이순신장군인지 권율
장군인지 헷갈렸다.그래도 이건 권율장군동상이였다.이 행주산성에서는 행주대첩이라는 큰
싸움이 일어 났다고 하는데 이 행주대첩에서 권율장군이 아주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그런
데 행주대첩때는 무기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여자들은 돌을 나르고 남자들은 돌을 던져서 나
라를 구했다고 하니 행주대첩에서 공을 세운 권율장군외백성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정말 어리석었던 것 같았다.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대비를
하고 무기도 마련해놓고 군사들을 훈련을 시켰으면 그렇게 큰 고통과 슬픔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그리고 덕포진으로 갔다.덕포진에 가는 동안에도 오~베이베가 끊
이지 않았다.덕포진중에서도 덕포진포대를 먼저 갔다.덕포진 앞으로는 염하가 흐르고 있어서
왜적이 많이 쳐들어 왔다고 한다.그리고 염하를 건너면 강화도가 보이는데 정말 까마득했다.
그리고 조금만더 걸어가보니 손돌이라는 뱃사공의 묘가 있었다.그리고 한 역사박물관에 갔
는데 엣날 서당의 모습을 볼수가 있었고 옛교실에서 수업도 하고 많은 것을 깨달은 후에나
강화도로 들어가게 되었다.옛날 같았으면 배를 타고 가야 했지만 지금은 다리를 놔서 차를
타고 강화도로 들어갔다.강화도는 섬중에서도 제일 아픔을 많이 겪은 섬이라서 역사의섬이
라고 한다.그중에서도 제일 어이없는 고통이 문양호라는 일본배가 물을 얻어 가겠다는 핑계
를 대며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시비를 거는 것이였다.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그리고
강화도의 첫 방어막이라고 할 수 있는 초지진으로 갔다.그런데 이곳은 신미양요때 미국군인
들이 붕괴시켰지만 다시 지었다고 하고 이천최고의 장군인 어재연장군과 어재순장군이 온힘
을 다해 싸웠다고 한다.그리고 영두돈대에 갔다.용두돈대에서 염화를 보면 정말 아찔할 정도
로 소용도리가 심하게 쳐서 약간 무서웠다.그리고 어느 한 절에 갔는데 그 곳의 대웅전기둥
에는 우리나라 군사들이 전쟁때 글씨를 쓴게 있다고 한다.그런데 휜눈이 반겨주며 우리의
역사기행 첫날이 끝이 났다.아침일찍 일어나서 마니산을 올랐다.오르면서 석주가 고소공포증
때문에 괜찮을까??생각했다.그리고 오랐는데 갑자기 일기제목이 떠올랐다."Happy story역사
기행`^^오르는 동안에도 무서워 죽겠는데 석주가 안보여서 올라가 보았더니 큰 바위 뒤에서
울고 있는 걸 목사님 께서 데리고 갔다.정상에 오르니 더욱 무서울줄 알았는데 상쾌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오르는데도 무서운데 내려가려면...........더 무서울 것 같았다.그런
데 내려 갈때는 올라가는 것 보다 무섭지도 않아서 금방내려 갔다.그리고 2시간20분만에 왕
복을 하고 918계단이나 올랐다.그리고 이규보선생님의 묘로 갔다.이규보선생님은 최고의 문
관이였는데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을 써달라는 편지를 보내었고 74년의일기를 쓰고 돌아 가
셨다고 한다.그리고 선원사지에 갔는데 옛날의 선원사라는 아주 큰 절이였다고 하는데 지금
은 불타버렸다고 한다.제일 큰 절보다는 팔만대장경을 쓴 곳이여서 더욱 유명하였다고 하고
몽골의 장키스칸이라는 사람이 신하들을 이끌고 강화도로 쳐들어 오려 했지만 염하를 건너
지 못하고 40~50년 동만 김포에서 기다리기만을 하였지만 나라가 어려워져서 초조대장경을
써서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지만 우리나라는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고 하고 팔만대장경이 유
명한 이유는 금속활자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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